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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주 | 박승남 | 2017-07-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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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7월 세 번째 셀 가족모임 1. 말씀읽기와 내용 살피기 EM묵상 중 주님께 보내 드린 카톡을 한 가지씩 말해 봅시다. 1)찬송 혹은 복음 성가를 몇 장 부름 2)제목 [에돔의 잘못과 형제사랑] 오바댜 1:1~16절을 교독하여 읽어 봅시다. 1. 당신이 알고 있는 형제 또는 자매간의 아름다운 이야기 또는 성경에 나오는 형제(자매) 이야기를 말해 봅시다. 1)가인과 아벨이야기-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이 드린 제사를 받아 주시지 않자 화가 난 가인은 동생에게 화풀이를 하여 들에서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는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보실 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는 반항적 대꾸를 했다. 고대에서는 형에게 동생을 지킬 책임이 주어졌지만 가인은 형이 동생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했으니 무책임하고 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쌍동이 야곱과 에서 이야기 3)요셉과 10명의 형들의 이야기 4)형제 아론과 모세 이야기 5)므낫세 지파 슬로보핫의 딸(자매)들의 용기 있는 이야기 (민27:1~11) 6)다윗과 형들이야기 7)다윗의 아들들인 암몬, 압살롬, 아도니아, 솔로몬 등 이복형제들의 참담한 이야기 2. 오바댜서는 어떠한 내용이며 오바댜서에 나오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지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오바댜는 구약의 가장 짧은 책으로 그의 이름은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오바댜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예언자로 활동했고,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에돔의 태도를 목격한 선지자다. 오바댜는 형제국이 멸망할 때 침공하고 약탈한 에돔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 책으로 형제사랑(필라델피아)의 교훈을 말씀하고 있다. 에돔 - 에돔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붉다’는 뜻으로 그 지역 땅이 붉은 색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또한 그들의 조상인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기도 하다. 창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여기서 붉고 는 아드모니이고 이는 붉은 것은 아돔이다. 그리고 에돔의 뜻도 붉은이다. 또한 이 모든 단어는 아담에서 유래되었다. 아담은 붉히다, 붉어지다, 붉게 물들다 라는 뜻에서 유래한 인간, 븕으스름한 이라는 뜻이다. 3. 그러면 오바댜서에서 에돔을 심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돔의 조상은 에서에 유래하고 에서는 야곱과 쌍둥이 형제다. 그래서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이며 이스라엘과 형제의 나라다. 그런데 야곱과 에서의 사이도 그렇지만 그 후손을 보면 이스라엘과 별로 가깝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를 보면 1)민수기 20장/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왕에게 사신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애급의 학대를 받다가 하나님의 인도로 지금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는데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해 하소서라고 한다. 지나갈 때 밭에 들어가지 않고, 포도원에 들어가지도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만 하겠고 혹시 물을 마시게 되면 값을 치르겠다고 하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에돔 왕은 “지나가지 못하리라. 칼을 들고 대적할까 하노라”라는 답을 줍니다. 이는 에돔 백성들의 마음도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과하지 못하고 가데스를 떠나 호르산에서 회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라바길로 들어서야했으며 때마침 아론마저 죽었고 여기저기서 백성들의 불만이 터지고 불뱀에 물려 죽어나가는 등 이스라엘백성들의 고통은 극에달했다. 결국 에돔은 이스라엘의 출애급의 진로를 방해하므로 이스라엘과 적대관계가 되었습니다. 2)본문의 경우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침공을 당했을 때 에돔이 어떻게 포악을 저질렀는지 10~14절까지 잘 말해 주고 있는데 공동번역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랑캐가 예루살렘 성문을 부수고 밀려들어 약탈하여 서로 나누어가지던 날, 너희는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한통속이 되었다. 동기인 유다가 재난을 당하는데, 너희는 고소하게 여기고 유다 백성이 망하는데 흐뭇해 하며 몸을 뺄 수 없는 궁지에 몰리는데, 마구 입을 놀려대는가 하면 내 백성이 참변을 당하는데 오히려 그 성문으로 밀려들고 처참한 일을 당하는데 '잘도 고생하는구나.' 하며 고소해하고 처참한 일을 당하는데 그 재물에 손을 대며 너희 동기들이 도망치는데 길목을 지키다가 쳐죽이며 몸을 뺄 수 없는 궁지에 몰리는데 겨우 살아 남은 자마저 남의 손에 팔아 넘기니 너희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 4. 교만하고 무정한 에돔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결과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해 봅시다. (5~6; 10; 15~16) 5. 에돔이 형제 야곱(유다)에게 행한 일을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10절) ‘포학’이란 히브리어로 ‘하마스’란 말인데 이 단어는 학대하다 발가벗기다 털어내다 난폭하게 빼앗다 해치다 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도덕적 잘못이나 잔인함 등 불의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 고아와 과부 등 약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일과 교활한 계획을 세우는 일도 포함한다.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실제로 칼을 들이대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잔인한 계획 그 자체가 포학이다. 얼마전 이웃끼리 시비가 붙어 자기 땅이라고 도로를 막아버려 연립주택으로 들어가는 길이 없어졌는 뉴스를 보았다. 이웃끼리도 인륜보다 이권이 앞서면서 담을 쌓아버렸는데 이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 이전에 자신의 마음에 그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그래서 연립주택 입주자들이 먼 길을 한참 돌아가기도 하고, 담을 넘어 들어가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런 것을 ‘포학’이라고 하실 것이다. 2. 말씀을 새겨보기 1. 12절을 보면 에돔 사람들이 형제의 나라 유다의 재앙의 날에 방관하고, 기뻐하고,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 나옵니다. 당신은 형제, 이웃이 어려움과 고난에 처할 때 어떻게 대하는지 말해 봅시다. “방관할”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ha;r;(라아) ’라는 단어로 보다, 바라보다, 주시하다 즐기다 기쁘게 보다 라는 뜻이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주시해서 보고 참으로 기뻐하였다. 남의 불행을 아니 형제의 불행을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동정해야 마땅한데 도리어 이스라엘의 멸망을 입에 담아 즐긴 것이다. 남의 험담을 하면 자다가도 깬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남이 안 되는 것을 내가 잘 되는 것보다 더 좋아 한다면 문제가 크다. 이런 잘못된 심리가 형제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형제를 파멸에 이끌 수도 있다. 시50:20절을 보면 악인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라고 하며 이어서 22절을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니라고 말씀한다.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형제 간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물론 남보다 못한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음을 잘 보여준다. 2. 에돔의 죄악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옵1:3절“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이는 견고한 바위 도시로 인해 교만해진 에돔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고대 에돔의 도시이자 ‘바위, 반석’이라는 뜻의 페트라로 들어가려면 폭이 3m도 안 되는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1㎞ 가량 가야한다. 그 끝에 다다르면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뜻을 가진 ‘알카즈네’라는 건축물이 나온다. 그런 골짜기에 바위절벽을 깎아 만든 화려한 건물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심판 예언처럼 페트라는 멸망해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와 발굴됐다. 오늘날에는 요르단의 고대 유적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성배를 찾는 장소로 유명해졌다. 신명기 23: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에돔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형제 이스라엘을 미워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지형적인 이유, 지식(지혜)(8절) 등으로 교만해지고, 자기 콤플렉스에 걸려 하나님도 이스라엘도 미워하게 되었다. 3.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태연히 앉아서 밥을 먹고 있던 형들의 모습을 그려봅시다. 구덩이에 들어간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요? 태연히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서 요셉은 어떤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됩니까? 그리고 당신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형제(자매)에게서 받은 상처 또는 가한 상처는 없는지 말해 봅시다. 창세기 42장 21절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온다.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에,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그렇다. 그 때 요셉은 매우 괴로워하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하지만 그 때 형은 그런 동생을 외면하고 태연히 앉아서 음식을 먹은 것이다. 집에서 식사하는데 가족 중 누구가 복통으로 배가 아프다면 가만히 앉아서 밥 먹을 수 없을텐데 말이다. 이 일은 요셉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형들은 동생이 당할 고통과 재앙을 알면서 이런 일을 조장하고, 방관하고, 즐기까지 하고 요셉이 죽었다고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했다. 잠언 17:17절을 보면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요셉의 형들은 위급할 도움은커녕 저들이 위급한 상황을 만들어 내 엄청난 고통을 주고 말았다. 4. 예수님의 말씀 중 사마리아 사람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강도 만난 유대인을 보고 가까이 가서, 그 상처를 싸맨 다음에, 정성껏 돌보아 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 대한 단어 가운데 ‘긍휼히 여기셨다’, ‘민망히 여기셨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이 많은데 이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긍휼이 없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야고보서 2:13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마태복음 25장 예수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 중 양은 오른 쪽에, 염소는 왼쪽에 나누신다는 말씀을 보면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때에 주님께서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 돌보지 아니하였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아니하였느냐고 한다. 그 때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 한 것이다”고 하셨다.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방관하고 외면하는 것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만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다. 로마서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베드로 전서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5. 요한일서 3:16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고 당신의 소감과 형제(이웃)을 향한 당신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 봅시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곧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구체적으로 돕는 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하면 비장한 느낌이 들고 크게 부담이 되며 또 막연하게 여겨지기도 하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한 형제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바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구체적인 실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일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하신 분으로 예수님은 사랑의 모델케이스다. 이러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2)요15:12-14‘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이 말씀을 보면 친구나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말과 서로 사랑한다는 말이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불후의 명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인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쉽지만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인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장담하기는 쉽지만, 여러 가지 사정 가운데 있는 가까운 이웃을 이해하고 돕고 사랑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독일의 권레베카 선교사도 자신의 간증서인 ‘아둘람으로 가는 길’에서, 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각오로 젊음을 바쳐 선교사로 헌신했지만 가까운 동역 자와 이웃을 사랑하는 법은 잘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3. 삶에 옮겨내기 1. 셀 리더가 읽어주는 성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문을 들어보고 마음에 와 닿는 바를 이야기해 봅시다. 2. 오늘 본문과 여러 형제(이웃)사랑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형제(이웃)을 사랑할지 다짐과 결단을 말해 봅시다. Ⅱ. 돌봄과 기도 (Work & Prayer) 아래의 제목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1) 주님의 뜻대로 더욱 형제(이웃)를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2)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과 후원하는 자립대상교회와 목회자들이 지치지 않고 사명 잘 감당하도록 3) 나라와 민족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와 지도자들을 위해 4) 셀 모임과 리더와 기도가 필요한 연약한 이들과 셀 가족 식구들 및 각자 기도제목을 들어보고 위해
Ⅲ. 증거 (Witness) ●EM: 계속 힘써 매일 묵상의 시간을 가집시다. ●식사 및 청소담당: 리폼드(1) 셀 ●다음 주 셀 모임: 1셀 주관 셀 연합 기도회로 가집니다. 그리고 이어서 쉬다가 8.31일부터 다시 모입니다. * 찬송 218장을 부르고 헌금을 드리고 셀 리더가 헌금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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