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완성되는 날 | 박승남 | 2019-08-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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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1-8절 개역개정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1-8 구원이 완성되는 날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날에 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묵상해 보면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올 이야기입니다. 그 날을 마음에 그리며 천국 백성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사도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땅이 다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태초에 생겨난 하늘과 땅, 즉 낡은 세상을 말합니다. 시간적인 존재는 언젠가 마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것은 주님이 오시므로 살아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전 하늘은 어떤 것이고, 이전 땅과 바다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땅과 바다는 어떤 이미지이고 어떤 영적인 상징일까요? 유대인들은 유목민이기에 바다와는 별 상관이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더욱이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해서 와 있기 때문에 늘 바다에 둘러싸인 외로운 섬에서 자기가 섬기던 교회를 그리워하고 있으면서 바다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바다는 격리, 외로움, 두려움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격리 당하고 외롭고 두려운 것이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인간들 간에 현재의 모든 장벽이 제거되고, 다시는 이별도 없고, 외로움이 없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의미로서의 바다일까요? 요한이 밧모섬에서 늘 바라보았던 그 바다, 그리고 그 땅이 없어졌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은 고난과 박해를 받고 있는 당시 땅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장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로마인들이 누비고 다녔던 바다가 다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세상을 어지렵혔던, 특히 성도들을 괴롭혔던 로마 세력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5장을 보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애굽군대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 정예 군대는 수장되고 바로의 권세를 겪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로마의 권세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여 교회를 박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그 언젠가 그 로마 세력은 다 무너지고, 사라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들은 잠시 동안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들 그것이 돈일 수 있고 세상의 권세 일 수도 있고 어떤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잠시 동안입니다. 바다가 사라진 것처럼 그 언젠가 그런 것들은 다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에게 새로운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강조합니다. 그 모습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새 신부 같았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신부의 모습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신부 하와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신 그림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승리한 교회입니다. 신부는 새 이스라엘입니다. 새롭게 탄생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결혼한 남편과 아내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묘사하였습니다. 신부인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그 안에 먼저 간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은 옛 하늘과 땅이 없어졌으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할 새 하늘과 땅이 먼저 소개되어야 할 텐데, 그 도시에 살아갈 사람들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살 것인가요? 왜 사람들이 먼저 소개되는 것인가요? 도시로서의 새 예루살렘은 9절부터 소개 됩니다.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과 함께 살아갈 신부이기도 하고, 또한 신혼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신부부터 소개하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에게는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이 먼저입니다. 로마는 노예와 사람들의 영혼을 사고 팔던 되시였습니다. 빌레몬서를 보면서 로마가 얼마나 노예를 학대했는지, 억압했는지를 잘 보았습니다. 악한 자들의 관심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 정권과 지위와 사치와 향락입니다. 그런 도시는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이는 좋은 사람입니다. 반면 조직이나 지위나 명예를 중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에게 결코 좋은 일꾼이 아닙니다.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새로운 일이 이뤄짐을 선포합니다. 첫 번째는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3절)입니다. 3절 안에 함께 라는 말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있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이루기를 원하셨던 것이고 출애굽기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셨던 소망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고 그래서 율법을 주시고 그래서 성막 즉 회막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11, 12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너희가 사는 곳에서 나도 같이 살겠다. 나는 너희를 싫어하지 않는다.나는 너희 사이에서 거닐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나라, 함께 사시고 함께 거니시는 나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꿈꾸시던 거룩한 나라입니다. 요엘2:27 이스라엘아, 이제 너희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과,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백성이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서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15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을 때 하늘에서 난 큰소리"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은 우리 옆에 천막을 치고 함께 사시기 위해서 이사를 오셨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을에 오셔서 나와 함께 사신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이 말을 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친히 회막에 오셔서 함께 사시고, 40년 광야 길을 함께 걸어가신 것을 그리면서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셔서 부분적으로, 인간과 함께 사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께서 거처를 완전히 사람들 가운데 두십니다. 하나님의 처소와 인간의 처소가 갈라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세상과 교회가 하나 되는 나라 그것이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천국은 예수님 계신 곳이다.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믿음을 말하면서 하나님과 사는 것을 분리시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믿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치게 되는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즉 주님과의 교제가 없이, 주님과의 만남이 없이 그저 예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상태로 일할 때 어떤 열매가 있겠습니까? 물론 일을 해서 성취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만족이 있을 수 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께서,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과 함께 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그분을 위해 일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함께 그 일을 하자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의 보기에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에 조금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들려온 뒤 이루어질 새로운 일 두 번째는 4절에 나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성도들이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했던 수고 고생 아픔 상처들을 아시는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닦아 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주님이 눈물을 닦아 주실 때 아마 새로운 눈물이 흐르지 않을까요? 감사와 감격의 눈물 말입니다.
세 번째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리고 그곳에서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망이나 애통이나 슬픔이 다시 있겠습니까?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습니다. 다 지나갔다는 것은 사라져서 깨끗이 없어진 것을 밀합니다. 20장에서 이미 모든 것은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구절은 잔인하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매매를 못하게 되어 극도의 빈곤한 삶을 살았고, 지긋지긋한 고통을 감수하며 살았던 성도들의 자리에서 읽어야 합니다. 거룩한 나라는 치유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착취하고 억압할 뿐 아니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살해하던 로마와는 크게 대조를 이룹니다.
5절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6절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더 이상의 아픔이나 고통과 죽음의 공포는 다 사라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십니다. 신실은 믿을 만하다는 말이고, 참되다는 변할 수 없는 진리라는 말입니다. 다 이루었도다 는 하나님의 예언은 믿음 만하고, 변할 수 없는 진리라는 선포입니다. 당시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무한히도 많이 속아왔던 것과는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애서 목이 타 보신 분입니다.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생명수 샘물을 준다는 것은 목마름을 해결하는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처럼 마시를 간절히 열망했던 바로 그 물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생명수 샘물은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나무와 쌍벽을 이루는 새 예루살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복입니다.
이어서 7절을 보면 이기는 자 즉 승리한 성도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선물이 제시됩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주실 최고의 선물은‘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라 가장 중요한 경건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과 바른 관계가 되어 주님과 사는 것,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생입니다. 여러분 3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라고 합니다. 그런데 7절에 와서는 그들이 그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의 왕국이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개인적이고 집단적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독자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도매급으로 취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십니다. 유업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교제를 가지게 됩니다. 사무엘하 7:14절을 보면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기는 자들이란 어떻게 산 자들입니까? 신앙의 결단으로 모든 영적 대적 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자, 끝까지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 승리하신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계시록 서두의 7교회 모두에게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계2:7 이기는 그에게는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2:11 이기는 자는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17 이기는 그에게는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3:5 이기는 자는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12 이기는 자는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3:21 이기는 그에게는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일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그러면 반대로 지는 자, 실패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요? 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려워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폭력과 박해자들 앞에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기를 주저하거나 마음을 바꾸어 거짓 것들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집니다. 그러므로 이겨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이김은 자기와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와 싸움에서 지는 자는 죄에 넘어지게 됩니다. 반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는 모든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 자는 모든 책임을 자기 스스로 져야 합니다. 죄의 책임을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못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죄의 책임을 본인이 지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이겨야 한다가 버겁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긴 자들은 주님을 의지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힘을 의지하여,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천국에서 영원히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한 곳에서 영원히 산다는데, 그렇다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어떻게 살 가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대답이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다”(5절)는 말씀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말씀은 한번만 새롭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는 항상 새롭게 변하는 나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계속해서 악하게 변합니다. 그래서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날마다 새롭게 변할 것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얼마나 기대에 찬 생활을 하게 될까요!
사랑하는 여려분, 신랑을 맞기 위해 단장한 신부의 모습으로 주님 앞으로 당신이 나아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때의 감격이 어떠할까요? 과거 결혼식 날을 회상해 보라. 어떤 감정? 물론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된 이들이라면 좋은 감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결혼하였다면 더욱이 두 사람은 무척이나 사랑하는데 주변의 박해와 방해가 있었지만 그것을 이기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라면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드라마의 단골주제) 실제 초대교회는 수 많은 핍박과 환난이 있었으나 신랑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천국에서 신랑 되신 주님과 결혼식을 올리게 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새롭게 단장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깨끗히 씻은 성도들, 세상에 살면서 힘들과 지치고 곤고하지만 날마다 주님의 의지하여 이기고 또 이기며 살아가는 성도들 바로 이들이 주님의 신부입니다. 여러분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참여하여 주님을 만나고 천국을 거닐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벅찬 모습입니까! 여러분 오늘의 말씀인 하나님이 약속과 위로는 이미 승리한 성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금 땅에서 짐승의 박해 때문에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위기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인내하므로 승리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현재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위해서, 믿음을 살기 위해서 고난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에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속상하고 답답하고 괴롭습니까? 막막하여 한숨을 쉬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놀라운 영광,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그 어려움과 시련과 고통을 다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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