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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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 박승남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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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33:1-14절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3:1-14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숭배한 사건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고 쓰리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온전한 교제를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행해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주신 멍에를 메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백성이 못되고 교만한 마음으로 방자히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몇 주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세상에 대해서, 원수 마귀와 악한 일에 대해서 목이 곧고 뻣뻣하다면 귀한 일이지만 하나님께 대해, 진리의 말씀에 대해 목이 곧으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며 악한 일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 그러면서도 책망하시는, 바르게 이끄시려는 사랑의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목이 곧은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하나님께서 일시에 목이 곧은 자들을 다 멸하실 수 있었지만,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를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어지신 사랑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정의 사이에 얼마나 심한 갈등을 겪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적인 측면에서는 죄를 지은 저들을 순식간에 진멸하셔야지만, 죄인까지도 사랑하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의 마음이 있으시기에 주님은 참으십니다. 그리고 이 두 마음으로 인해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고통의 절정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모두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인을 진멸하시는 그 공의로 아들을 대신하여 죽이셨고 죄인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울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고의적으로 마음을 아프게 만들 때 부모는 매를 들고 때리고 벌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막상 때리려고 하니 부모의 사랑이 허락지 않습니다. 잘못하는 것을 보고 참으려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막혀서 속에서 불이 타오르고 그래서 어떤 이들은 화병까지 생깁니다. 여러분 부모의 공의와 사랑의 갈등 속에서 고통당하는 부모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자기 자식들 몇 명으로 인한 고통입니다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로 인한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장신구를 떼어 내라 공의의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겸손한 참회의 자세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육체를 장식하고 즐겁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버려라. 너희가 회개한다고 하면서 귀걸이 손목 걸이, 화장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없지 않으냐, 몸을 요란하게 꾸미고서 회개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진정 참회하는 자는 꾸밈없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특히 저들은 장신구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귀걸이와 팔찌 등으로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악과 관계되었던 그 모든 것들을 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에 관한 결과만 회개하지 말고 그 죄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계속적으로 죄에 빠지게 만드는 죄의 장신구들을 끓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에 빼진 우리를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이러한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누르시고 저들에게 회개를 일깨우시고 그들을 받아 주시기를 작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장신구를 제하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 중에는 특별하게 좋은 평을 듣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욥도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에 대해서도 성경에는 아주 좋은 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수기 12:3).

모세는 세상 누구보다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판과 비난을 받기도 하고 원망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아무리 비판하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도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모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친밀했습니다.

이러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자 진중에 있던 장막을 취하여 진 밖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모세는 그 장막을, 주님과 만나는 곳이라고 하여, 회막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721절을 보면 회막 안 증거궤 앞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회막은 한자로 모일 회에 장막 막 자를 써서 會幕이라고 씁니다. 모이는 장막, 만나는 장막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the Tent of Meeting이고 현대어 성경에도 만남의 장막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7장에서 31장까지 성막에 관한 말씀에서 회막은 16번이나 사용되고 35장에서 40장까지 18번 사용됩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4033~35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이 말씀을 보면 회막이라는 단어를 3번이나 사용합니다. 그리고 성막과 회막이 동일한 천막/건물/장소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의 다양한 명칭은 화면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친 회막은 무엇일까요? 이는 단어는 같지만, 모세가 친 회막은 성막과는 다른 것입니다.

 

회막은 성막을 만들기 전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는 곳으로, 모세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곳입니다. 그러면 진 가운데가 아니라 왜 이스라엘 진 밖에 설치되었을까요?

여러분, 이것은 당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아서 회막이 이스라엘 진중이 아닌 진 밖에 설치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회막은 분명 이스라엘 진중에 설치되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게(592)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와 함께 거하지 않으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시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우리를 살펴 죄의 문제를 정리,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그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교회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교회는 여느 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단지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들의 모임이 교회로 불리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스스로 성결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로서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회막이 진 밖에 세워졌는데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라고 합니다. 저들은 죄악된 심령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8절 말씀처럼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만큼 저들의 관심이 하나님께 집중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시적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경배하며라고 합니다. 저들은 회개하는 눈물로 회막을 바라보았을 때 구름 기둥이 나타났고 그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저들은 앉아 있을 수만 없어서 다 벌떡 일어나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제 저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인간관계의 회복도 소중한 것이지만 더욱 주님과의 관계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기도와 예배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사모함을 통해 여러분과 주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회복된 분들은 그 관계가 잘 유지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생명이요, 은혜요, 복입니다.

 

다윗은 시편 32:1~5절에서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것을 감격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내렸습니다. 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무조건 우리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에 박힌 가시는 아무리 작아도 빼지 않고 그냥 두면 그 자리는 붓고 염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럴 때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픕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시는 박힌 채로 그냥 두고 스치는 것만 조심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대로 하자면 손에 박힌 가시를 빼야 합니다. 그래야 부은 것도 가라앉고 염증도 없어집니다.

회개는 이렇게 가시를 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그 가시를 빼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주십니다. 용서해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백성들이 회개하며 주님을 경배할 때에 모세는 다시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12~13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그런데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 그리하여 네가 안전하게 하겠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3절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여러분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시지 않겠다 하시니 저들에게는 살 만한 용기도 가치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의미는 상실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또한, 시편 127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한 이스라엘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회개한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저들과 동행해 주십니다. 저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어린아이가 잘못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참다못해 종아리를 때립니다. 하지만 아이가 맞고 흐느껴 울 때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서 껴안고 달래 줍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그 백성들이 범죄 하였을 때 진노하시고 징계하시지만, 그 백성들이 잘못을 회개하고 은혜받기 위해 주님께 나아 올 때 그만 봄 눈 녹듯이 그 마음을 푸시고 그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시편 30: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만이 참된 복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잠깐의 기쁨일 뿐이라는 것을가나안 땅을 얻는 것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질병이 낫고 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얻어도 우리의 내면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갈증을 느껴서 더욱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욕망을 위해 달리던 삶을 멈추고 현재의 아름다움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마태복음 1128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참 쉼은 하나님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 좋고 시설 좋은 곳을 빌려서 많은 돈을 내면서 쉴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넷플릭스 드라마, 영화를 보고 오락을 즐기면서 또는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오는 길은 여전히 피곤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쉼이라면 어디서나 마음의 쉼을 누리며 행복할 것입니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심으로 새로운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때로 심신이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 한마디에 우리는 새 힘, 새 용기, 새 신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모든 피곤이 사라지고 지쳤던 자리에서 일어나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를 향해서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모든 이스라엘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우리 모두를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말씀이 감격스럽습니까?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살고, 흠 없이 사는데 이렇게 말씀해주셨다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형편을 살펴볼 때 아니 우리의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회개하는 심령을 긍휼히 여기셔서 이 놀라운 복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489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명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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