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 영광 | 박승남 | 2025-05-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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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계시록4:1-11절 개역개정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11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 영광
여러분 중에 지금 고난 중에 있는 분은 없으십니까? 힘들고 지치고 곤곤한 분들은 없습니까? 주님의 크신 은총과 위로를 빕니다. 요한 계시록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계시록 1장 9절에 밝히는 것처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밧모 섬은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90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울릉도 절반정도의 면적 약 34km 입니다. 사도 요한은 로마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 A.D.81~96) 황제 때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 섬의 어느 동굴에 갇혀 지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당시 약 90세로 매우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 같으면 낙심하거 비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한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어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박해 상황속에서 고난당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날 길이 없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빛이 비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주님의 날에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고 영광스러운 보좌와 장차 일어나야 할 일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늘 영광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흥분이 되었겠습니까? 하늘빛이 비치면 환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형을 피해 도망가던 야곱에도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도망갈 때 형이 따라올까 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가도 걱정, 뒤로 가도 걱정이었을 것입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루스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를 영접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짐승 소리가 울렸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늘 문이 열리니 “야, 여기에 주님께서 계시거늘 괜히 염려했다”라며 편안해 졌습니다. 또 하나님의 음성도 들렸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늘 문이 열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 걱정, 근심이 없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사라지고 하늘의 기쁨과 평화와 소망으로 가득차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4장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머릿돌로 가장 중심적이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천국의 중심,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을 뵐 수는 없습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요한이 하늘에 올라가서 뵈었을 때 하나님은 계신데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장엄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사도 요한을 하늘나라로 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시가 시작이 됩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이 하나님 보좌 앞에 갔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2절을 보면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이 요한계시록의 묵시 또는 계시가 사도 요한이 하늘 보좌에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당시 로마 황제가 다스리는 비결은 만약 황제를 숭배하기만 하면 부를 주고요. 향락을 주었습니다. 이게 로마의 법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항거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로마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바꾸시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 홀로 남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을 바꿔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하늘로 올려서 하늘 보좌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ㅑ 이 세상과 우주의 통치자는 누구냐?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우주를 통치하는 통제소, 지휘소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세상에 권세 잡은 자들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여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나 시진핑이나 푸틴이나 그리고 새로 선출될 새 대통령이나 그들의 권세, 권력으로 세상이 움직여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처럼 하늘에 올라가서 이 세상을 본다면 누구나 진정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 이 땅과 우주의 통제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로구나 하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통치자들은 하늘의 통치자가 계심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겸손히 자신의 직분을 사심없이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충직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로 올리워진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내리시는 모든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이 계시, 묵시를 써서 고난 받는 교회들을 위로하고 권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도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요한에게 보여 주신 보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3절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보석과 색깔로 묘사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나오는 벽옥(‘ιασπις’(이아스피스)=jasper)이 나옵니다. 이러한 벽옥이 계시록 21장 19절에도 나오는데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라고 합니다. 또한 21장 10, 11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보면 벽옥은 천국과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보석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8장을 보면 대제사장의 흉패에 박힌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값비싼 보석이 붙여 있는데 그 중 맨 아랫줄 맨 끝 벽옥이 있고(출28:20) 이는 납달리 지파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납달리 지파는 어느 지역에 살았을까요? 바로 이사야 9:1~2절에 예언된 것처럼 전에 고통 받던 지역이었지만 후에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시고 큰 빛을 비춰주신 갈릴리입니다. 물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 된 것으로 갈릴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아랍인 도시인 나사렛은 인구의 약 30%가 기독교인입니다. 2021년 기준 아랍계 기독교 인구는 2만 1,10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그러니 천대받고 고통당하는 자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어서 홍보석은 선홍, 주홍색으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좌로부터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치는 소리가 나고 또 음성이 들렸습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요한은 하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바로 녹보석 같은 무지개였습니다. 녹보석은 에메랄드, 비취옥으로 그 아름다운 녹색의 광휘로 인해서 고대에 가장 귀중한 돌로 생각되었고 많은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것이며 이것은 푸른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무지개는 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9:13~15) 이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들어 있는 생명의 언약(약속)입니다. 따라서 녹보석 같은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생명을 약속하시는 은총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한없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진정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사랑과 정의와 생명과 평화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보좌 주변의 모습입니다. 4절을 보면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고 말씀합니다. 하늘 보좌 둘레에는 보좌 스물네 개가 있었는데, 그 보좌에는 장로 스물네 명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의롭다함을 입었다는 것이며 금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24장로는 누구인가요? 원래 장로라는 말은 구약에서 그 시골의 촌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투표를 해가지고 어른을 뽑았는데 그들이 장로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아마 이것이 교회 초대교회 장로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24 장로들은 쉽게 말하면 구약의 12지파의 장인 12명의 장로고요. 또 신약 시대에 구원받은 성도의 대표인 12 장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은 태초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구약이냐 신약이냐를 나누지 않고 . 하나의 교회로 다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표 12명, 신약에서 구원받은 사람 대표 12명 이건 대표적인 사람들이고 상징적인 사람이지 꼭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서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를 우리가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아직 세상 끝나지 않았으나 구원받은 모든 이 땅의 성도들의 대표, 성도들이 하나님 주변에 모여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이러한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인류 역사를 통한 구원받은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에는 12지파의 이름이 12대문에 쓰여 있고 12사도의 이름이 성벽의 기초석에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시고 하늘 나라 백성답게, 천국백성답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모습이 나옵니다. 5절입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성령은 항상 일곱 등불로 표현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 우리 영안이 밝아지고요.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깨달아지고요. 말씀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그 피 공로로 구원을 받고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의 조명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말씀을 깨닫고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6절입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유리 바다”는 요한계시록에 세 번 나옵니다. 그 중 15장 2, 3절을 보면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유리 바다 가라고 되어 있는데 유리 바다 위에라고 번역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리 바다 위에 승리한 성도들이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유리 바다 밑에는 뭐가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밝히지 않고 있지만 분명한 암시가 있습니다. 이 유리 바다는 죄와 하늘나라를 분리해 놓은 것이고요. 또 죄악의 빠졌던 사람들과 이긴 자를 분리해 놓는 곳이 바로 이 유리 바다입니다. 그 유리 바다 밑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곳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역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위협, 박해하고 괴롭히던 자들이, 복음에 냉담하던 이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며 그런 가운데서도 승리한 자들은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24장로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시록 3장 11절을 보면 빌라데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인데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피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면류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잘 보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장로들이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풍습과 상통되는 이야기입니다. 로마 황제가 있는데 그 거대한 제국을 혼자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헤롯 같은 분봉왕을 많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봉 왕들이 황제를 알현할 때는 제일 먼저 자기들이 왕관을 벗어서 던졌다 합니다. 계시록 1:6절을 보면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여기 나라는 왕국입니다. 로마 제국에서 황제와 그에 의해 임명된 여러 왕들이 있었듯이 영원한 전능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으로, 또한 제사장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왕과 제사장은 영광스러운 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을 벗어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철저하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떤 봉사를 크게 했든지 작게 했든지 간에 여러분 사람의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이 주셨고 그 일을 이루도록 힘 주셨고 여건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그 일을 이뤘다면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그게 하나님을 대하는 바른 자세입니다. 그러면서 24장로들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라고 외치며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찬양하고 자신들은 그 창조주 앞에 다만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천국에 가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땅에서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흥, 내가 어떤 사람인데 ... 하면서 겉으로만 겸손한 것은 위선이요, 죄입니다. 비록 남보다 똑똑하고 잘났고 힘이 있을지라도 “나는 못난 종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중심으로 고백하며 섬기는 종이 진정으로 겸손한 종입니다. 참된 종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4장을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보좌이 모습 앞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모십시오. 오늘 우리들의 예배의 참된 모습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천상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납니다. 하나님께는 가장 존귀한 것이 예배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강조한 것이고 요한은 이 천상의 모습을 본 후에 지상을 내려다 본 것입니다. 그런데 왜 4장이, 왜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보좌의 예배로부터 시작하는가요? 그 이면에는 뭔가 뜻이 있습니다. 왜? 이것은 로마 황제숭배와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로마 황제주변에 뭐가 있나 하면 흰옷을 입고 걸터앉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로원들입니다. 어떤가요? 하늘 보좌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지 않습니까! 지금 지상에서는 황제와 원로원이 통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좌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지금은 황제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생각하기에 다 황제 앞에 굴복하고 있고 황제를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야, 황제 그 따위가 무슨 신이냐?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요한을 하늘에 올리셔서 하늘나라의 보좌의 모습을 보게 하심으로써 요한의 역사관을 바꾸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아, 그래 하나님이 세상의 통치자야 라고 모든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보좌는 예배의 중심이면서 정치적인 파워의 중심입니다. 우주의 지휘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용을 대신한 로마의 파워와 하나님이 파워의 싸움이 지금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눈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가깝기에 보이는 세력에 굴복합니다. 눈에 보이는 권력, 돈, 힘에 굴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선언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안에 이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이 땅을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이러한 위대한 선언을 하기 위해서 4장을 쓴 것입니다. 로마 황제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모임의 중심이 자기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게 바로 선악과를 제거하고 자기가 그 자리에 서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대 4장은 인간의 본능을 깨끗하게 무너뜨려 버립니다. 인간은 아무도 역사의 중심, 권력의 중심, 공동체의 중심에 설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4장입니다. 그냥 말하지 않고 보좌를 보여 주고 그것으로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찬양하여야합니다. 그리고 24장로가 면류관을 주님 앞에 드린 것처럼 그리고 네 생물이 두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운 것처럼 오늘 우리도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한 8절을 보면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라고 합니다. 이는 신속하게 움직이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반응하는 상징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즉각적인 순종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의 모습은 즉각적인 순종의 모습은 고사하고 내 멋대로 하지 않으면 그나마 성숙한 신자라고 일컬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은 나의 예배의 대상이 누구이신가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광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 거기에 들어갈 자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세상에 취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답게 고고하게, 거룩하게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고 더욱 사랑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영광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한없는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2025년 5월 2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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