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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의 왕의 통치를 받으라 박승남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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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47:1-9절 개역개정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47:1~9 온 땅의 왕의 통치를 받으라

 

한때 로마가 수많은 나라를 다스린 시대에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과 로마의 평화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온 세상을 한 왕이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온 땅에 평화가 있다는 뜻이고 모든 지방이 그 왕의 통치에 복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느 지방에서든지 반역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황제는 군대를 파견하여 진압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 공평으로 다스리십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참으로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사연이 있음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20일 목요일에는 오른쪽 손가락에 두 개뿐이고 두 다리가 없는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시댁 식구들과 남편으로 인하여 이혼까지 하면서 입양한 일과 8살 위가 되는 어린 딸이 스스로 중학교 1학년을 자퇴하면서까지 그 아이를 함께 돌보면서 수많은 경제적, 정신적 고생, 극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감동적인 간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간증 제목은 시편 3723-24절 말씀으로 [넘어질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리고 매일 30분간 여러 교회 찬양팀을 주축으로 찬양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앞에 서서 노래하는 이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겠지만, 기도회에서는 당연히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렸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수고하고 귀하고 훌륭한 일을 했어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수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여 개선 행진을 하였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이 나와서 박수하며 환호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들이 잘해서 이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악한 자들을 심판하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갈망했던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악으로 반역하는 자들을 쳐부수어서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5:15)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당시 가나안 땅은 거룩한 땅이 아니라 우상 숭배와 음란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임재 때문이기도 하고,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해야 할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47편은 다윗이 악의 세력을 쳐부수고 예루살렘에 개선하면서 온 세상을 진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입니다. 다윗이 악한 나라를 쳐부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강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런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1).

우리는 찬양할 때 주로 박수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쁨, 환영, 감탄, 찬성 등의 감정이 있을 때 두 손뼉을 마주쳐서 소리를 냅니다.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아름다운 꽃이나 아름다운 경치입니까? 잘 생기거나 노래, 연기 등을 잘하는 연예인입니까? 유명 스포츠인의 환상적인 경기입니까? 뛰어난 예술가의 놀라운 매력적 재능입니까? 그렇다면 그 아름다운 꽃과 경치를 만드시고, 그 모든 외모와 재능을 부여하신 분에게도 그렇게 손뼉 치고, 탄성을 지르고, 찬사를 보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십니까?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할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손바닥을 치면서 환영했습니다. 여기서 손뼉을 치면서 환영했다는 것은 멀뚱멀뚱하게 보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열렬하게 환영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를 환영했습니까? 누구에게 감탄했습니까? 물론 다윗과 그 용사들에게 그리했겠지만 시인은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손뼉을 치라고 합니다. 다윗의 군대에게,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박수로 하나님을 환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을 더 자세히, 더 깊이, 더 친밀하게 알아가십시오. 그러면 손바닥을 칠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 즐거운 소리를 외칠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더욱 알게 될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대한 피조물들을 만날 때, 나와는 그 크기와 힘을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고 두려워합니다. 자연재해들을 만날 때도 그렇습니다. 거대한 산, 협곡, 폭포, 바다 앞에 설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진정 삼라만상,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멀리서만 보면 그저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면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을 정말 가까이서 본다면, 그분을 제대로 경험하고 제대로 안다면 그분의 크고 위대하심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 안에 경건한 두려운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사도행전 1917~18절을 보면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 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의 전도와 하나님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에베소 사람들에게 경건한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며 자복하며 회개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하나님은 어느 한 민족 간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 아니요 어느 몇몇 그룹만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온 세계 만민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재자이시며 온 세계 인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찬양해야 할 것은 전 인류의 공통된 의무요 사명입니다.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악한 자들이나 악의 세력을 공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조선 시대에 새로운 왕이 세워지면 중국의 명나라나 청나라의 승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큰 왕, 황제는 다른 나라 왕의 지시나 승인을 필요치 않습니다.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며 한번 내린 그의 결정은 절대적인 효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 영향을 줍니다. 온 땅에 큰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었지만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쟁할 때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했고,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도 그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 승리의 보고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승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시란 사실을 드러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왕이시라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죄악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과거에는 악한 왕들이 병들어 죽든지 아니면 그 나라 안에서 반역이 일어나든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의 공격으로 곧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당시 다른 나라들의 전쟁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완전히 그 성격을 달리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공격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나라의 보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빼앗고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쳐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고 악한 왕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전쟁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군대가 진격하는 곳마다 억눌린 사람들은 손뼉을 치면서 다윗의 군대를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파송한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3).

우리는 죄악 된 세상에서 빠져나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한다면 우리는 세상과 담을 쌓아야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자신을 세상에서 격리해야 나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이 되어서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이 세상의 죄악과 싸우게 하시며 거기서 멸망할 사람을 건지게 하십니다. 마가복음 1615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소극적인 시대와 적극적인 시대가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과 같은 족장 시대는 소극적인 경건의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살았지만, 히브리서 1113절 말씀처럼 외국인 즉 이방인과 나그네 살았습니다. 그래야만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정복부터는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한 가나안 땅의 범위를 정해 주시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악한 세력을 무찌르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2을 보면 가나안 땅에서 쳐 죽인 서른한 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명령은 모든 악한 세력을 뿌리 뽑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건전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가나안 땅이라는 한정된 범위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그 범위를 더 벗어나서 악한 나라와 왕을 정복하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이 오늘날 유럽이나 동아시아 등 멀리까지 원정하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큰 범위에서 정의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기 시대를 지나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종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 한 사람에게 능력을 물 붓듯이 부으셔서 지난 몇백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윗 한 사람을 통해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오래전 은행에 근무했을 때 금고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 금고에는 여러 서류도 있지만 현금과 수표, 유가 증권 등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고에 들어가려면 다이얼을 맞추어야 합니다. 특히 현금 등을 보관한 또 다른 금고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나 쉽게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은 대형금고와 같습니다. 아무리 다이얼 번호가 비슷하게 맞는다고 할지라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금고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신앙과 자세가 일치할 때 하나님의 보물 창고 안에 들어가서 무한한 복과 능력을 받아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은 하나님 앞에 사는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경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으로서. 죄로부터 구별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격리되는 과정입니다. 이때 세상 친구들이 자기들과 술자리 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할지라도 이때 분리되지 않고 격리되지 않으면 사람의 인정에 따라서 끌려다니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적극적입니다. 이 세상의 죄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에 나가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온 땅의 큰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왕은 우리를 왕으로 삼으십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모습을 보여주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도록 하는 귀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회적인 역할을 보여줍니다. 소금은 부패를 막는 것으로 더러운 죄와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하기만 해도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가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되게 하십니다. 이 직분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5:16)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화목하게 하고 화평하게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직분에 최선을 다할 때, 마치 위에 있는 동네가 감추어질 수 없는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도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해 오시고 정의를 실현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의 간접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면에 나타나지 않으시고 모두 간접적인 방식으로 심판을 하시니까 심판이 심판 같지도 않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종이 나타나서 악한 자를 멸망시켜 버리고 속박받던 자들을 구원하고 의로운 왕을 세우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참된 구원자, 생명의 주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여 하늘에 속한 자로 하늘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우리를 높여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로,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높여 주신 이유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며 절대적인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너무 작은 나라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높은 도덕 수준과 정의를 향한 열정을 보았을 때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죄짓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백성들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초청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존경하느냐 하면, 바로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히 의로운 자들이 아니고 의에 대하여 대단한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은 무한한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들과 친하기를 원하며 그들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열방이 다윗과 그 백성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이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연단을 받으며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온 세상이 그에게 나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여기 올라가신다는 말은 내려오셨다는 것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악한 자와 싸울 때 하늘 보좌에서 내려오셔서 함께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도 임무를 띠시고 원래 자신의 보좌로 복귀하시는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이기셨고 악한 자에게 사로잡혔던 자들을 구원하시어 많은 백성을 건지신 상태에서 원대 복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온 세상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오르셨다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다 해결하시고 하늘 보좌에 오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귀의 세력을 멸하셨고 많은 죄인을 건지셨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왕의 자격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온 세상의 왕(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영접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영광스러운 기업으로 받은 교회는 온 세상을 향하여 예수만이 그리스도, 메시야, 구세주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분을 믿고 섬기라고 외칩니다. 그분께만 순종하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권, 통치가 오직 교회 안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칩니다. 사탄의 세력은 이 세상의 단 한 평이나 한 사람이라도 지배할 법적인 자격이 없습니다. 사탄은 오직 불법의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사탄에 복종하지 말고 온 땅의 왕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주님께 복종하십시오.

한때 대기업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했던 김 모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은퇴 후 시작한 사업이 예상치 못한 대규모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모든 재산이 걸린 싸움 앞에서 김 집사님은 자신의 명성과 오랜 경험, 법률 지식 등 그동안 의지했던 모든 '세상의 방패'가 무력함을 깨달았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던 중, 그는 문득 시편 47편의 이 구절,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온전히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든 그는 소송의 결과, 재산의 유지,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도 모두 내려놓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유일한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주님, 이 소송의 판결자도 주님이십니다. 저는 이제 주님의 백성으로서 평안을 누리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법정 싸움은 계속했지만, 더 이상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법정이라는 세상 권위의 장에서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렸고, 결국 인간적인 노력과 지혜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던 극적인 화해와 해결을 경험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빌립보서는 우리에게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될 것을 분명히 선포합니다(빌립보서 2:9-10). 당신을 위협하는 것들, 노후에 대한 불안, 가족의 문제,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세상의 방패를 의지하는 불안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 아래 있는 담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6절 맒씀을 보면 우리에게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고 촉구합니다. 이는 감사의 표현을 넘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당신의 인생의 보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당신의 염려, 당신의 계획, 당신의 재물이 아닙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오직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자리에 합당하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즐거운 함성과 찬양으로 그분의 통치를 선포하는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뼉을 치며 찬양합시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아멘. 202511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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