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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호크(법칙)와 찬양 박승남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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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48:1-14절 개역개정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제공: 대한성서공회

148:1~14 하나님의 호크(법칙)와 찬양

 

여러분, 혹시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1990, 지구로부터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탐사선 보이저 1호가 고개를 돌려 지구를 촬영했습니다. 그 사진 속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의 어둠 속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먼지 한 톨에 불과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이 장면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 명명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점을 다시 보십시오. 그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집이고,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인류가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인간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졌다는 망상은 이 창백한 빛의 점 앞에서 무너집니다.”

세이건의 말처럼, 우주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은 거대한 침묵 속에 버려진 외로운 미아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우주비행사 스톤 박사가 끝없는 어둠 속으로 튕겨 나갈 때 느꼈던 그 절대적인 고독, 혹은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의 쿠퍼가 블랙홀의 심연에서 마주했던 그 막막한 공간처럼 말입니다. 대중 매체들이 그리는 우주는 대개 차갑고, 공허하며, 인간의 비명조차 전달되지 않는 진공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우주의 이면을 들려줍니다. 시편 기자는 이 거대한 공간이 차가운 진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휘봉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성소라고 선포합니다. 칼 세이건이 우주의 정교한 질서에 경탄했다면, 시편 기자는 그 질서의 배후에 있는 신의 의지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그들이 서로 충돌하여 파멸하지 않도록 저마다의 신성한 궤도를 정해 주셨습니다. 은하계의 회전부터 우리 뇌 속 신경세포의 미세한 흐름까지, 이 우주에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통치의 리듬이 흐르고 있습니다.

 

시인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거대한 밤하늘의 심연을 응시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쏟아지는 목록들을 보십시오. 천사들과 하늘의 군대라는 영적 존재들로부터 시작하여 해와 달, 광명한 별들, 그리고 대기권 너머의 하늘 위의 물들까지, 시인은 온 우주의 구성원들을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이때 시인이 던지는 단어는 찬양하라입니다. 이는 단순히 찬양해라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이것은 잠자고 있는 피조물의 영혼을 세차게 흔들어 깨우며, 그대들의 존재 이유를 지금 당장 소리 높여 증명하라!”는 강력한 촉구입니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그의 저서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 현대 물리학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은 명사들의 집합이 아니라 동사들의 집합이다. 우주는 단단한 물체들이 놓여 있는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연속체다.”

로벨리의 말대로라면, 저 하늘의 별들은 단순히 허공에 매달린 물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빛을 내고, 궤도를 그리며, 서로의 중력으로 끌어당기는 거대한 사건이자 관계입니다. 6절입니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이여기서 명령은 히브리어로 호크(חָק)’입니다. 규정(), 법령(), 관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폐하지 못할 법칙, 호크를 주셨을 때, 우주는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변했습니다. 별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운행하는 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신성한 호크법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장엄한 광경을 두고 구약 신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는 이를 창조의 자기 고백(Self-confession of Cre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폰 라트에 따르면, 피조물은 인간을 위한 배경 화면이 아닙니다. 피조물은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증인입니다. 별이 빛나고 물이 흐르는 그 평범해 보이는 자연의 법칙 자체가, 사실은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분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신앙고백이라는 것입니다. 폰 라트는 강조합니다. 피조물이 자신의 본질을 지키는 것, 그것이 곧 예배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왜 우리 인생에 불협화음이 생깁니까? 왜 우리의 일상이 찬양이 아닌 소음이 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축복의 궤도, 말씀의 호크를 벗어나려 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질서가 곧 노래가 되는 신비는 우리가 내 힘으로 악보를 쓰려고 할 때가 아니라, 이미 우리 인생에 주어진 하나님의 악보를 신뢰하며 그 궤도 안에 머물 때 일어납니다. 천상의 별들이 그 호크안에서 빛나듯,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라는 거룩한 리듬 안에 머물 때, 여러분의 일상은 비로소 하늘의 울림을 담은 우주적 찬양이 될 것입니다.

 

[장면 2] 지상의 야성: 심연조차 지휘하시는 하나님 (7-10)

이제 시인의 시선은 은하계의 정교한 질서를 뚫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거칠고 역동적인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7절에서 지상의 찬양을 시작하며 시인이 가장 먼저 호출하는 대상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너희 용과 바다여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로 볼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 바다 괴물(תַּנִּינִים, 탄니님)과 깊은 바다(תְּהֹמֹות, 테호모트).”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탄니님(바다 괴물)’테호모트(심연)’는 단순히 생물학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에게 대항하는 파괴적인 혼돈의 세력, 즉 인간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공포의 실체였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거대한 산맥처럼 밀려오는 밀러 행성의 파도 앞에 무력했던 인간의 공포를 기억하십니까? 혹은 우리 인생에서 마주하는 갑작스러운 암 진단, 사랑하는 이의 상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울의 늪이 바로 오늘 본문의 심연이자 바다 괴물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어서 경이로운 선포를 합니다. 8절입니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그의 말씀을 따르는, 말씀을 행하는(עֹשֵׂה דְבָרֹו, 오세 데바토)’ 존재라고 말합니다. 원어로 오세 데바토인데 오세행하다, 만들다라는 뜻이고, 데바토그의 말씀입니다. , 우리를 두렵게 하는 그 광풍과 깊은 바다가 결코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사고(Accident)’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지휘봉 아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수한 임무를 수행 중인 알꾼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쁜 꽃과 부드러운 바람만 지휘하시는 온실 속의 지휘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폭풍우 한복판에서도 그 소음들을 모아 장엄한 교향곡을 만들어 내시는 분입니다. 1735, 존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주로 선교 사역을 떠나기 위해 '시몬스(Simmons)' 호라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같은 배에는 독일 작센 지방의 헤른후트(Herrnhut) 공동체에서 온 26명의 모라비안 교도들도 타고 있었습니다. 대서양 한가운데서 배가 침몰할 정도의 거대한 폭풍우를 만났을 때,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영국인 승객들과 웨슬리는 큰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모습으로 시편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웨슬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훗날 "저 모라비안 교도들도 하나님을 믿고 나도 하나님을 믿는데, 나는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데 저들은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며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에 따르면, 세상의 권력과 세속적 가치관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의 고난은 의미 없는 우연일 뿐이야. 이 어둠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 이것이 세상의 상상력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대항적 상상력은 다릅니다. 그것은 세상이 혼돈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능력입니다. 브루그만은 말합니다.

찬양은 세상의 가짜 질서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행위다. 우리가 심연 속에서 노래할 때, 우리는 이 어둠이 결코 최종 승자가 아님을 선포하는 것이다.”

신앙인은 세상이 파괴라고 부르는 광풍 속에서, 그 바람에 실려 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바다 괴물을 보고 도망치지만, 대항적 상상력을 가진 성도는 그 괴물조차 하나님의 발등상 아래서 노래하고 있음을 꿰뚫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삶에 불어닥친 광풍이 혹시 하나님의 호크(법칙)’ 밖에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의 깊은 우울과 고통의 테호모트(심연)’조차 사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대한 공명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통 중에 내뱉는 신음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그 고통조차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인정할 때 터져 나오는 낮은음자리의 찬양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바다 괴물에게 명령하십시오. 나의 질병아, 나의 가난아, 나의 슬픔아, 너희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피조물일 뿐이니, 너희의 자리에서 창조주를 찬양할지어다!” 우리가 이 대항적 상상력을 회복할 때,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로 변화될 것입니다.

 

천상의 별들과 지상의 거친 야성을 지나온 찬양의 거대한 물결은, 이제 마침내 인간 사회의 심장부로 밀려듭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기에는 그 어떤 문턱도, 차별도, 계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근 신경과학계는 인간이 압도적인 자연이나 신성한 존재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Awe)’이 우리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 압도될 때, 우리 뇌의 전두엽(Prefrontal Cortex) 중 자아를 의식하고 계산하는 영역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활동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전두엽은 평소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며 이기적인 자아를 공고히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 이 전두엽의 자기중심성이 잠시 멈추고 이른바 작은 자아(Small Self)’ 현상이 일어납니다. 동시에 공포와 불안을 주관하는 편도체(Amygdala)의 과잉 반응이 억제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외감을 느낄 때, 타인을 경계하는 편도체의 날카로운 경보는 잦아들고 뇌는 타인과 연결되려는 유대감의 상태로 진입합니다. ,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 뇌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평화롭고 가장 평등한 상태, 이기심이 사라진 공동체적 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적인 평등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된 장면이 바로 12입니다. 노인과 아이가 함께 노래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노인의 깊고 묵직한 저음(Bass)과 이제 갓 피어난 아이의 맑고 청아한 고음(Soprano)이 하나의 선율로 어우러집니다. 세상에서는 노인의 지혜가 아이의 미숙함을 가르치거나, 아이의 젊음이 노인의 쇠락함을 밀어내려 하지만, 예배의 현장에서는 그 모든 위계가 무너집니다. 그들은 그저 창조주를 마주한 동등한 피조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사상가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그의 저서에서 근원적 경탄(Radical Amazement)’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탄은 종교적 삶의 시작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소유할 물건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가 비쳐 나오는 창문입니다. 경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헤셸은 우리가 만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 영적 교만이 싹튼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탄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옆에 앉은 성도를 경쟁자타인이 아닌, 함께 신비의 세계를 여행하는 찬양의 동료로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의 신비가 무엇입니까? 가장 높은 곳의 하나님이 가장 낮은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격차를 허물고 우리를 함께 화합하며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묶으신 사건입니다.

오늘 여러분 곁에 있는 분들을 보십시오. 나와 세대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경제적 형편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들 때, 우리 뇌의 이기적인 전두엽은 작아지고 사랑의 유대감은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인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나설 때, 세상을 정복할 대상이나 평가할 대상으로 보지 말고 헤셸이 말한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내 옆의 성도를 볼 때 판단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작품을 대하는 경이로움으로 대하십시오. 우리가 서로를 향해 경탄하며 노래할 때,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곳의 노래를 부르는 하늘의 식탁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13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נִשְׂגָּב, 니스가브).”

여기 높으시며에 대한 히브리어 니스가브라는 단어는 사가브(sagab)’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단순히 키가 크거나 위치가 높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손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절벽 위의 높은 요새를 뜻합니다. 적군이 아무리 화살을 쏘아도 닿지 않고, 인간의 사다리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e)입니다.

현대 천문학은 이 니스가브의 의미를 수치로 증명합니다.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지름이 약 93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빛의 속도는 초당 약 30km(299,792,458 m/s)입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그 어마어마한 속도로 930억 년을 쉬지 않고 달려가야 겨우 끝에 닿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빛 중 어떤 것들은 이미 수억 년 전에 사라졌음에도 그 빛이 이제야 우리 눈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 압도적인 시공간의 스케일을 마주할 때, 우리는 시인이 느꼈던 그 니스가브전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거대한 우주를 지으시고, 그 끝을 한 손에 쥐고 계신 분의 이름이 얼마나 높으시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왕의 위엄을 표현할 때, 인위적인 조명과 음향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위엄)이 인위적인 조명과 음악을 뛰어넘어 하늘과 땅 위에 가득하다말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분이 우리의 좁은 논리 체계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구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내 지성 안에 다 들어오시는 분이라면,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수준의 하나님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해되지 않는 고통의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을 다 분석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의 니스가브’, 그 높고 높은 요새 앞에 겸손히 엎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저 우주 930억 광년의 끝을 다스리시는 당신의 지혜는 완벽하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보다 크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이 시작됩니다. 우리보다 무한히 크신 분이기에, 우리는 그분께 우리 삶의 모든 난제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신비에 기꺼이 항복하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이 웅장한 우주 교향곡은 마지막 악장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반전을 보게 됩니다. 13절에서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절벽 위의 요새처럼 높았던 그 니스가브(높으신)’ 하나님이, 14절에 이르면 갑자기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그와 가까운 백성(עַם קְרֹבֽוֹ, 암 케로보)의 찬양을 받으실 이로다.

히브리어 암 케로보에서 백성, 케로보그에게 밀착된, 가까운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거리가 가깝다는 의미를 넘어, 마치 연인이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을 만큼 밀착되어 있거나, 자석이 쇠붙이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은하계 930억 광년의 끝을 지휘하시던 그 거대한 손길이, 지금 고난으로 꺾여버린 당신의 ’(힘과 권세)을 어루만지시며 다시 높여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신비로운 이론 중 하나인 우주의 미세 조정(Fine-tuning of the Universe)’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리 상수들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하게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경탄합니다. 예를 들어, 우주 팽창의 속도가 지금보다 1/1060 (1060승분의 1)만 느렸어도 우주는 이미 오래전에 수축해 버렸을 것이고, 반대로 그만큼만 더 빨랐어도 별과 행성은 형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력의 세기나 전자기력의 강도가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만큼만 오차가 있었어도, 우리 몸의 탄소 원자는 결합하지 못했을 것이며 생명은 시작조차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이를 두고 우주에는 누군가가 물리 법칙을 미세하게 조정한 흔적이 역력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미세 조정하신 것처럼, 지금 여러분의 인생도 미세하게 조정(Fine-tuning)하고 계십니다.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이를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기계처럼 만들어 놓고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신음소리에 공명하며 그들의 삶을 세밀하게 조율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탄의 본질입니다. 무한(Infinite)이 유한(Finite) 속으로, 저 영원한 별들의 호크(법칙)’를 정하신 분이 이제 우리 마음의 호크가 되어 주시려고 낮고 낮은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주의 보좌를 비우고 우리에게 밀착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 속에 던져진 이름 없는 미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주가 온 우주의 물리 법칙을 동원하여 지켜내고 있는 암 케로보(가까운 백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내 인생의 미세 조정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주의 팽창 속도를 조절하시는 분이 우리의 인생의 타이밍을 모르시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내 삶이 어긋난 것처럼 보여도,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인생이라는 악보를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도록 지금도 미세하게 조정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길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릴 때, 14절을 기억하십시오. 우주의 주인이 우리를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을 높이실 것입니다. 세상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드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존재는 창백한 푸른 점 위의 먼지가 아니라, 창조주의 심장 소리를 듣는 보석입니다. 성탄 후 첫 주일,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송년 주일에 우리 곁에 밀착되려고 오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번 힘차게 찬양의 삶을 시작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늘과 땅, 온 우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

성탄의 신비가 온 땅에 가득한 이 계절에, 시편 148편의 장엄한 찬양 속으로 우리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930억 광년의 광활한 우주를 한 손에 쥐시고, 해와 달과 별들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궤도를 달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호크(חָק)’, 그 흔들리지 않는 통치의 법칙 앞에 우리 모두 겸손히 엎드립니다. 주님, 때때로 우리 인생에 바다 괴물과 같은 고난이 닥치고, 광풍과 같은 시련이 휘몰아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어둠의 심연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 찬양의 한 파트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를 내려놓고 근원적 경탄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우리 곁에 있는 성도들을 판단의 눈이 아닌, 함께 우주적 찬양을 부르는 존귀한 동료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저 높고 높은 요새와 같은 니스가브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암 케로보(עַם קְרֹבֽוֹ)’, 즉 당신께 가장 밀착된 가까운 백성이라 불러주신 사실입니다. 은하계를 지휘하시던 그 위대한 손길이 오늘 상처 입은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며 우리의 뿔을 높여주실 줄 믿습니다. 우주의 미세 조정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시듯, 우리 인생의 작은 신음까지 미세하게 조정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신뢰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 휘둘리는 관객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당당히 춤추는 찬양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가까이 부르시려 구유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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