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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중요한 것 | 박승남 | 2026-0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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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7:3-12절 개역개정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삼상 7:3~12 진정 중요한 것 작년 9월 국민일보 기사인데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바로는 개신교인 내 극우성향으로 분류된 집단이 전체 응답자의 21.8%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 전체의 극우 비율인 21%와 비슷한 수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다수 개신교인은 극우 성향 개신교 집단의 탄핵 반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개신교 전반이 극우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목사나 크리스천임을 강조하는 인물들이 탄핵 집회 주도자이기에 보이는 착시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화해를 핵심 신앙 가치로 강조해 온 개신교가 사회와 다르지 않고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탄핵당한 윤 전 대통령과 그 동조자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국지적인 전쟁을 일으키려고도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헌법 제66조 제3항을 보면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음에도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당시 지도자인 사무엘이 일반 상식적으로 볼 때 어이없는 행동을 합니다. 사무엘이 어떠한 도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적들이 쳐들어올 수 있는 엄청난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미스바로 모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층이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위험한 일이었을까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무엘상 4장과 같이 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과 싸워 대승을 거둔 블레셋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크게 미치고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벌써 20년이 지났고 사무엘도 장성하여 30이 넘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완전한 성년이고 영적인 면에서는 물론 정치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무엘이 전민족적으로 행한 일이 바로 미스바로 모이게 한 일입니다. 미스바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곳으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 소식은 금방 블레셋에 알려질 것이 뻔하고 그러면 당연히 적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이 쳐들어와 미스바가 점령된다면 이스라엘 남쪽과 북쪽이 분리되는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중요 인사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끝장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무엘에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다는 것은 사무엘이 지금 이스라엘을 위기 중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무너진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그 고생하면서 나라를 세우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사탄은 그런 일을 몹시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일은 어쩌면 윤 전 대통령이 원했다고 하는 국지전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위기 중에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하게 한 것은 물을 붓고 금식시키고 하루 종일 기도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블레셋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종일 금식이 웬 말입니까? 전쟁이 발발되면 싸워야 할 텐데 종일 금식하고 무슨 힘으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블레셋이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까? 국가적 위기 상황인데 교회에서 예배만 드린다고, 기도만 한다고 해결되리라 믿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것은 비단 우려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이 블레셋 사람에게 들어가니, 블레셋 통치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왔습니다. 당연히 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 20년 아벡, 에벤에셀 전투의 악몽이 떠올려진 것입니다. 법궤를 빼앗기고 두 제사장을 죽임을 당하고 삼만의 이스라엘 보병이 전사한 악몽 말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 앞에 생생한 과거의 사건이었습니다. 도대체 지도자 사무엘은 왜 이런 상황까지 이스라엘을 몰고 간 것인가요? 이러한 것을 예측하지 못했나요? 만일 그렇다면 그는 너무도 무능한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측했다면 무책임한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지도자 사무엘은 무능하지도 무책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왜? 이스라엘을 위기로 들어가게 한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말입니다. 에릭 프롬이라는 철학자는 소유냐 삶이냐? 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을 소유형의 인간과 존재형의 인간으로 구분합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목적을 무엇인가를 소유하는데 두는 사람을 의미하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소유에 두지 않고 자기의 자기 됨에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喻於義 小人喻於利) )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소인은 매사를 생각할 때 그것이 의로운 일인가 불의한 일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소유형 인간과 소인, 그리고 존재형 인간과 군자는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인들은 자기 삶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까요? 물어볼 것도 없이 자기 삶의 가치를 TO HAVE가 아니라 TO BE에 두어야 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은 무엇인가요? 로마서 1장 17절을 보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을 말씀하는데 이것을 공동번역은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소유를 원하고 하나님은 바른 관계를 원하십니다. 바른 관계만 되면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을 사무엘은 안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에게는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기 중에서도 미스바로 모이라 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5절을 보면 왜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는지 그 이유를 밝힙니다.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그 때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미스바로 모이게 하였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주께 기도를 드리려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개인적 야욕을 위해서나 무지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전민족적으로 하나님께 용서받도록 사죄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모이게 한 것입니다. 물론 그냥 혼자서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심을 위해 그리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영적인 분위기가 많이 변했습니다.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영적으로 혼미하고 어두웠던 시기를 벗어나 이제 이스라엘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각했습니다. 여기 ‘사모하다’의 원어 ‘나하’라는 단어는 울부짖다, 슬퍼하다, 애도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민족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잘못을 생각하면서 슬퍼하고 울부짖으면서 하나님께로 마음이 옮겨지는 것을 사모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저들은 이방 신들도 가까이했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도록 결단하게 하도록 3절과 같이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하였고 이어서 미스바로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제단에 물을 붓고 종일 금식하고 통회의 기도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다음은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킬지를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올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기 탈출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본 이스라엘의 위기는 블레셋의 침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었습니다. 관계가 깨지면 법궤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유, 축복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축복, 소유, 형통은 우선순위 넘버 2입니다. 그리고 넘버 2를 제일로 삼으면 제1도 제2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구약에서 신약 계시록까지 면면히 흐리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대표적인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교회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심지어 주님을 내쫓아 버린 교회입니다. 그러고서도 저들은 복 받았다.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또한 말씀합니다. 넘버 1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 관계와 복을 동시에 얻게 됩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바로 창세기 2장의 선악과이고 또한 신명기 28장입니다. 선악과는 한마디로 관계를 이어주는 나무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에덴동산의 주인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고 자신들은 청지기인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관계보다 소유를 택하여 결국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만 바르게 되면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였지만, 하나님께 금식하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대승을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치욕의 장소, 패배의 장소 에벤에셀 그곳이 진정한 에벤에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2026년 1월 21일 경찰서 신우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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