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엘 2장 12~14절, 누가복음 12장 35~48절 얼마 전 유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는 두 번째 4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 6년간 세계 1309개국의 과학자 2300명이 참여해 작성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입니다. 지금처럼 화석연료 사용이 계속되어 지구가 더 뜨거워지면, 앞으로 30년 안에 양서류를 중심으로 지구 생물종의 20~30%가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인간도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태풍·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질병과 상해는 물론, 식량과 물 부족이 예상됩니다.
지상 오존 농도 증가로 심장과 호흡기 질환이 늘고, 전염병 발생 지역이 변화하면서 인간의 건강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따뜻해진 겨울’이나 ‘제일 더운 여름’이 아닙니다. 지구온난화는 뜨거운 재앙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자연을 보며 마음을 찢는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 창조세계의 동산지기로 부르십니다.(창 2:15). “잘 다스려라. 잘 보살피고 돌보아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관리하고 보전하는 청지기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빠지기 쉬운 유혹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맡은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즉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는 착각이고, 다른 하나는 맡은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게으름입니다. 세상과 자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사실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2절에서 주님은 물으십니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겠습니까?” 깨어서 기다리는 청지기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도 않고, 그 뜻대로 행하지도 않는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경고하십니다.
과연 우리는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입니까? 이 지구를 위임받은 동산지기로서 우리는 지구가 이렇게 뜨거워지기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이 지구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일에, 지구를 소비하고 풍요를 누리기에 정신을 빼앗기지는 않았습니까? 먹고 마시고 취하여 있는 게으른 청지기는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요엘 선지자는 주님의 날, 가뭄과 메뚜기 떼로 인해 제물마저 동나리라고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요엘 2장 12절과 13절,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옷을 찢는 것 자체가 회개의 표시인데, 그 옷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랍니다. 마음을 찢는 철저한 회개는 마음의 중심·의지·계획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화석연료에 기댄 문명, 이 문명이 과연 축복인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경제성장만이 살길이라며, 모든 것을 경제적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오묘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자비와 사랑에 근거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파괴하고 착취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품고 있는 우리의 친구요 형제자매입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의 끈으로 엮여있음을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마음을 찢는 회개입니다.
지구를 식히기 위해 실천하라
이제 마음을 돌이킨 청지기가 할 일은 ‘지구를 식히기’입니다. 지금까지 데워놓은 만큼 식히려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현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방식,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방식은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한 부부가 모처럼 영국 런던으로 외국여행을 다녀왔다면, 이 즐거운 여행이 지구에 남긴 짐은 얼마나 될까요? 두 사람이 배출한 CO2는 약 7톤에 이릅니다. 이만한 양을 공기 속에서 다시 붙잡으려면, 산 1ha에 어린 잣나무 3000그루를 심은 뒤 평생 잘 돌봐야 한답니다. 만약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람처럼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구가 다섯 개가 있어야 합니다. 인류는 저마다 20명의 에너지 노예를 부리는, 고도의 소비 지향적 생활방식을 향하여 죽기 살기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구온난화는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마 16:2~3)는 주님의 경고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돌이켜 “지구를 식혀라”.
물론 지구를 ‘식히는’ 환경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물질인 CO2를 줄이려면, 먼저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합니다. 우리 삶 구석구석의 변화를 여구합니다. 종이컵을 안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교단 회의나 교회행사 때,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또한 제품이 생산돼 폐기되기까지 들어간 CO2의 양, 즉 ‘CO2의 발자국’을 적게 남긴 제품을 사서 쓰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노지 과일이나 채소보다 열배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작품을 안사면 뭘 사먹을까요?
화석연료 문화의 핵심인 자동차에 이르면, 고민은 더욱 커집니다. 철저한 청지기 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활방식, 삶 자체를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도 그 온실가스 저감, 지구온난화 억제가 어렵다면 어떻게 할까요? 여러 지표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말해줍니다. 지난 1월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 해결을 위한 준비가 가장 부족한 것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를 선정하였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70%는 줄여야 지구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를 기막히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아무리 해도 앞으로 수십 년간은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사회의 적응을 강조했습니다.
요엘 2장 13절 ‘주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는 말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정말 깨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에 책임적으로 응답하느냐, 파괴적 삶을 지속하느냐 신앙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때입니다.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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