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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박승남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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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6:19-31절 개역개정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6:19-31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15장의 유명한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잃었다가 다시 찾은 영혼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왜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국과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분석하여 보면 천국보다도 지옥에 대하여 더 많이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도 나사로가 천국에 있는 모습은 단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묘사합니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소원이 없기에 - 완전한 만족이 있기에 말이 필요 없는 것이겠죠. 그런데 지옥에 간 부자는 고통받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사람이 탄원해야 할 소원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한 모습을 18번 이상 말씀하심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더 간절히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데 도둑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도둑놈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람피우는 사람들입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옥 설교를 싫어할까요? 지옥 갈 사람입니다.

토레이(R.A.Torrey) 박사가 어느 시골에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는데 강당이 꽉꽉 차고 넘치도록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겠다고 미리 광고하였더니 그날은 자리가 절반도 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옥 설교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듣고 싶지 않고 아무리 부정해도 지옥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지옥의 실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곳이기에 예수님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면서까지 지옥문 입구를 막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크나큰 죄악 때문에 유황불로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만은 미리 알려 피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이 두 예비 사위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이곳에서 떠나라라고 경고하자 두 사위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창세기 19:14절에 보면 농담으로 여겼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농담은 요즘으로 하면 조크, 개그입니다. 장인이 되실 어른의 말씀을 그리 여긴 것입니다.

설마하니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장인어른, 농담이지요? 아니면 치매가 와서 지금 제정신이 아니시던지 하고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두 사위는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유황불에 타죽고 맙니다.

그런데 롯의 두 사위가 바로 오늘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하면 가서 보았습니까? 이 땅에 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 일을 말하세요. 농담하지 마세요.”라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출석 잘하지 않는 미국인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70% 이상이 믿는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33.8%가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요? 놀라지 마십시오. 41.1%만이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믿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겨우 8%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 결과는 한국교회는 내세 신앙은 사라지고 기복주의만 남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에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나사로를 다시 살려 보내어 자기 형제들만큼은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라고 하면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말씀을 조롱하는 사람은 그 누가 간다고 해도 듣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한 믿음으로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자기들에게 속한 사람들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천국과 지옥은 없다고 말하면서 대표적으로 오늘 말씀을 지적하며 어디 천국과 지옥이 나오냐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품이 곧 하나님의 품으로 천국을 나타내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음부가 고통받는 지옥임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러자 오늘 말씀은 비유이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비유는 없는 것을 만들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 관하여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등등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설명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비유는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초대교부 터툴리안(Tertulian)은 나사로의 이야기가 분명하게 나타난 것을 보면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적 역사임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이 사람의 경우를 보고 오셔서 이야기를 들려준 것처럼 전달해 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사로라는 거지의 이름이 밝혀진 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비유 속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나사로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가난하고 병들은 거지이지만 그의 경건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습니다. 그 성경이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21~22장을 통해 마지막으로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사실이지요.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모든 이유는 주의 백성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왜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왜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왜 교회를 세우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유언을 하셨겠습니까?

만약에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부인한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면 하나님도 부인하는 것으로 아직 참된 신앙을 가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 천국이 없다면 -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라고 말씀합니다.

 

전도서 311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곤고할 때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나 신을 찾게 됩니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대하여 회피하고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말이나 감정으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며 말하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행복해서 기쁠 때는 얼마나 쉽게 천국 같다 말합니까? 또한 참혹한 자연 재난 현장을 보면서 얼마나 쉽게 지옥이 따로 없다 말합니까?

 

어느 목사님께서 밝히기 쉽지 않은 가정사를 말하면서 복음을 전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천국과 지옥에 가 본 적도 없지만 한번 경험한 건 있어요. 우리 아버님을 일찍이 60세에 갑자기 불러 가셨거든요. 그 모습을 본때부터 제가 천국을 분명히 믿고 내세를 생각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천국만 본 것이 아니라 지옥의 현장을 같이 보았습니다. 뭐냐 하면 저희 아버님에게 새어머니가 오셨는데 늦게 만나시여서 둘이 좋아했는가 봐요. 그래서 전혀 예수도 안 믿는 그런 분을 불쌍하다고 같이 사는데 이분이 얼마나 강퍅한지 명색이 그래도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이 목사인데도 예수를 안 믿어요. 그렇게 좋은 걸 사주고 간절히 부탁해도 안 나가고. 우리 아버지가 교회 나가면 갔다 오면 성경 감춰버리고 찢어버리고 구역예배를 오면 문을 딱 잠가 버리고제가 알지 못하는 핍박도 많이 하셨는지 우리 아버지 일기장에 보니까 피눈물이 나는 고백을 많이 써놨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희 아버님이 우리 교회에 다녀왔다가 부흥회를 다 마치시고 부흥 강사한테 안수기도 받고,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날 저녁에 연탄가스 사고가 났어요.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달려가서 보호자가 올 때까지 안치해 놓은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집사님으로 그래도 기도하시고 부흥회를 하셨으니, 심령이 얼마나 깨끗했겠습니까? 또 안수기도 받았겠다. 돌아가셨는데 진짜 평안한 모습으로, 천사의 얼굴을 하고 편안하게 잠드신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 피를 흘리고 계시는 그 계모를 보니까 - 절에 가면 칼을 들고 그 밑에 이상한 것들이 입을 쫙 벌리고 혀가 댓 발이나 빠진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 현장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봤어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어야 한다. 세상의 부조리를 볼 때마다 불공평을 볼 때마다, 잘 돼야 할 사람이 못 되고 못 되어야 할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외친 첫 번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또한 피 흘려 교회를 세우신 이유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지옥문을 막고 계시며, 교회를 통하여 천국열쇠를 주셔서 천국에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러면 어디에 천국-하나님 나라가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아직'의 천국

요한복음 17:3절을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한 죄인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이미 그는 영생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 안에서 사는 것이며 죽음은 그 영생의 연장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셔서 우리의 심령에 은혜와 평강이 흘러넘치면 우리 안에 임합니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면 천국의 지점이 됩니다.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면 천국의 전초기지가 됩니다. 그런데 이 땅의 하나님 왕국은 사단의 왕국과 함께 일정 시점까지 병존하고 있고 신자 또한 죄의 본성이 있어서 완전한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신자는 이미 종말론적 시대에 살고 있으나 아직 최종적인 상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집인 천국을 사모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주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어디까지요. 하늘나라까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국까지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릅니다. 우리는 준비해 놓는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헛것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천국까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준비해 놓으셨다면, 그곳까지 가는 모든 과정도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데 누가 그곳에서 살 것을 다 준비해 놓았다고 하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한 모든 것을 다 내가 준비해 놓았다.” 천국까지 너희의 미래를 준비해 두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집인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기를 원하십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진심으로 소망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다가오는 수많은 문제와 고난을 완벽하게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지 못하는 성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지 못하고 천국에서는 예배만 드리고, 찬송만 하리라 생각하며 심심한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있어도 이 세상만큼 재미있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옥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고 기쁨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리고 늘 새롭습니다.

 

하지만 지옥은

1.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부재한 곳입니다.

가장 큰 형벌은 고난과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부재입니다. 영원한 불에 떨어지는 자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6)

그래서 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지옥문에 적혀있는 문구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비전이 없는 곳이 그리고 꿈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는 메시지치고는 간결하면서 강렬합니다. 한 줄의 이 문구는 희망을 잃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되거나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2. 지옥은 육체적 고통과 영적인 고통이 영원히 있는 곳입니다.

1946127일 조지아(Georgio) 주 아틀란타(Atlanta)에 있는 위네코프(Winecoff) 호텔에 불이 났는데 그 화재로 비명을 지르며 죽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라디오로 중계될 때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 울었다고 합니다. 116명의 사람이 그 화재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 중에는 창문에 뛰어내려 죽는 사람도 있었고 포장도로로 떨어져 다리가 부서지고 머리 가 터져 죽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고압전선에 떨어져 감전되어 타 죽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나무 위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소방서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나 불길에 쌓인 창문에서 떨어지는 그들 모두를 안전그물 안에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끔찍하게 떨어져 죽었을까요? 그 불길이 뜨거운 열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든지 불길만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옥의 불은 위네코프(Winecoff)호텔의 불길처럼 실제적이고 확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에는 뛰어내릴 창문도 없습니다. 불길을 피할 수 있는 길이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지옥은 불길로 차 있는 곳입니다. 만일 지옥에서 뛰어내린다면 도로 그 불길로 뛰어드는 것뿐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며 문자 그대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요, 울부짖으며 괴로움을 당하는 장소입니다. 지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거절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1:9절을 보면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지옥은 고통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이 지상에서의 시간입니다.

 

3. 지옥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하나님께 반역한 마귀와 마귀의 부하 천사들에게 형벌을 주기 위해 예비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싫어하고, 마귀를 따르며 죄를 짓는 자들은 마귀와 그의 부하들과 함께 형벌의 장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2541절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은 자기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자기 죄의 문제를 맡기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자기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베드로전서 1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따라서 지옥으로 가는 것은 인간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영원까지 함께 하거나 영원히 분리되어 심판받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삶, 영원한 지옥 형벌을 선택합니다. 결국 그 책임은 자신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맛보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는 자로서 권세 있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영혼 구원의 사명,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께 칭찬받고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4.2.1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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