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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나누는 고통 | 박승남 | 2026-03-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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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고통
이 땅의 고통에는 ‘때문에’ 고통이 있고, ‘함께’의 고통이 있습니다. 질병, 자식, 이웃이나 형제, 돈, 실패 때문에 그리고 죽음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무엇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이런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야만 하는 고통입니다. 또 빨리 극복할수록 좋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함께’ 나누는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이 그 아픔을 잘 이길 수 있도록,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함께 그 고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르게 성장하고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함께 나누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나 자신이 맛보아야 하는 헌신과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로 당하는 고통은 ‘때문에’ 고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은 ‘함께’ 나누기 위한 고통입니다. 죄로 인하여 파멸 당하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류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기 위하여, 아니 그 고통을 다 짊어지시기 위하여 겟세마네의 고통과 그 모진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신 것입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마침내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인류 구원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왜 내가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며 화를 냅니다. 또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고난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고난을 나누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나와 함께 깨어 있자”고 권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함께’ 나누는 고난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2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교회를 위해 기쁨으로 괴로움을 받고, 주님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이제부터 주님의 고난에, 그리고 교회의 고난에 함께 참여합시다. 그리고 내 이웃의 고난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가까운 이웃만이 아니라 먼 이웃들의 고통에도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겟세마네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겟세마네, 우리의 겟세마네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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