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말씀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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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주 박승남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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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1월 네 번째 셀 가족 모임

1. 말씀읽기와 내용 살피기   

1)찬송 혹은 복음 성가를 몇 장 부름 2)오늘의 제목은 [성탄을 기다린 목자들]이며 눅2:1~20절을 읽어 봅시다.

1. 그림으로 보기 

1. 대림절은 어떠한 절기인지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대림절은 교회절기의 첫 절기로 기다림의 절기이다. 즉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2천 년 전 첫 번째 성탄절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이제 그 분이 종말에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절기이며 성탄절을 준비하는 절기다. 올해의 대림절은 12.3~24일까지이며 대림절을 강림절, 대강절이라고도 한다.

 

2.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다렸던 것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말해 봅시다.

1)이스라엘이 애굽 또는 바벨론에서의 해방을 기다렸다. 2)이스라엘 백성들은 환란과 핍박을 당하고, 나라를 빼앗기는 서러움과 고통 속에서 메시아 곧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 즉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약 300여개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3)신약시대에도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들은 사도 요한이 증언한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의 나라가 조만간 임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주의 재림을 기다렸다.

 

3. 누가가 본문 7절에서 알려 주는 첫 번째 성탄절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당시에도 여관은 부자들이나 지도자들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서민)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 당시에 부자들은 여행을 할 때면 자신과 같은 수준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 집에서 머물렀고 공적 지도자들은 관사에 머물렀다. 그런데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인 여관에도 있을 곳이 없었다. 그리고 이 말은 그 누구도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거나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4. 2천년 전 첫 번째 성탄을 맞는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그 당시 메시아의 오심과 그 장소까지도 알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은 전혀 메시아의 오심에 관심을 가지거나 기다리지 않았다. 동방박사들을 통해 메시야가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보고 환영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집과 회당과 그리고 성전을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분을 찾아가 만나뵈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이는 그들이 진심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베들레헴에 있는 그 어떤 사람들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위하여 빈 방을 준비하거나 그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아 결국 그들은 모두 첫 번째 성탄절을 놓치고 말았다.

 

5. 첫 번째 성탄절을 놓친 그들과는 달리,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말해 봅시다.

그들은 다름 아니라 들에 있던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 등이다.

 

6. 목자들이 들은 놀라운 첫 성탄 소식은 무엇이며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했나요?

10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그들은 그 구원의 복된 소식을 믿었다. 그리고 천사들이 떠나자 곧바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했다. 그리고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빨리”speuvdw(스퓨도), 이 단어는 누가복음 19:5~6절에도 나옵니다. 삭개오를 보신 예수님이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하시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왔는데 속히, 급히 모두 speuvdw(스퓨도)라는 단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음에 삭개오의 마음이나 목자들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복된 소식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믿고 순종하고 반응했다.

“찾아서”라는 단어 ajneurivskw(아뉴리스코)는 수색하다, 찾다는 뜻으로 이 단어가 보여주는 바는 목자들은 아기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지 못하고, 아기를 찾기 위하여 베들레헴의 여기저기를 수색하듯이 찾으며 돌아다닌 것이다.

 

2. 사건으로 겪어내기 - 말씀의 개인화

1. 그동안 살아오면서 기억되는 기다림의 시간(시절)이 있었다면 말해 봅시다.

기다림에는 불안, 초조한 마음이 있고 실망치 있기도 하지만 인내가 필요하기도 하다. 인내 없이는 끝까지 기다릴 수 없다. 그렇기에 기다림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기다리는 사람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림은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목사이며, 찬송가 작사자인 호라티우스 보나르 (Horatius Bonar, 1808-1889)는 아침에 해가 뜨면 창문을 열고 커텐을 젖히며 “주여! 이 아침에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또 밤이면 창문을 닫으며 “주여! 이 밤에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항상 주님을 기다리고 맞을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3. 가슴으로 이해하기

1. 대림절 신학(신앙)을 잘 보여주는 계시록 22장 20절에 나오는 아람어 동사 “마라나타” 에는 어떠한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1)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사건을 표현하는 완료형 동사로 읽을 때에는, “마란 아타”(maran—atha)로 그 의미는 “Our Lord has come” “우리 주님이 이미 오셨습니다”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을 의미한다. 2)이 단어를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기원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그 경우에는 “마라나 타”(marana—tha)로 읽습니다. 이 경우에는 “Come, Our Lord!” “주여 오시옵소서”가 되고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구, 소망이 된다.

그러므로 “마라나타” 라는 이 외침에는 예수님의 초림을 기억하고 감사하며(마란 아타),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마라나 타) 대림절의 신앙과 신학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우리 기독교는 이처럼 기다림의 종교이다.

 

2.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첫 성탄의 소식이 왕이나 귀족, 장군,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그 당시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낮은 계층 사람들이었던 목자들에게 들려졌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목자들이 구세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은 아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 한 가지 대답은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 성탄의 소식이 바로 그 당시 가장 낮은 자들, 천대받은 자들이었던 목자들에게 들려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복된 소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첫 성탄의 복된 소식은 이렇게 가장 낮은 자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외롭고, 가난하고, 병들고, 괴로운 사람들,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셔서 복된 소식, 죄와 사망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천사는 “내가 온(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눅2:10)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째 주일, 우리는 가장 낮은 자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신분, 자격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영접해주시는 주님, 우리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히 사모하고, 또 겸손히 모셔 들이므로, 그가 주시는 참된 구원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란다.

3. 아이러니 하게도, 예루살렘 성과 성전 안에는 수많은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 레위인들, 그리고 서기관과 랍비 들이 있었지만, 최초로 성탄의 복음을 듣고, 또 전했던 사람들은 바로 모든 이들로부터 소외당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천사들을 통하여 전해진 하나님의 뜻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온 백성들에게 미쳐야 할 것이었다(눅 2:10). 즉 메시아의 구원의 소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소외됨이 없이, 모든 백성들에게 전해져야 할 복음이었기에, 그 기쁜 소식은 그 당시에 가장 소외되었던 목자들에게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전해진 것이다. 그 당시 목자들에게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첫 성탄의 기쁜 소식이 전달되어진 것이다. 구원의 큰 기쁨의 소식은 오늘도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하고,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먼저 받은 우리들을 통하여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민을 구원하실 메시아께서 오셨다.

 

4. 교회는 중세로 넘어갈수록 소망과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세 로마 카돌릭 교회는 더 이상 구세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 않게 된 이유는 오직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이 땅에서 누릴 권세와 영광에 취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부자가 되었고, 교회 안에 돈과 황금과 은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교회는 타락과 멸망의 길로 떨어지게 되었다. 정말 있어야 될 영적인 힘과 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세상을 살리는 "생수의 근원지"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언젠가 중세의 한 교황이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화려한 금으로 치장된 성 베드로 성당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 이제 우리는 그 옛날 베드로가 외쳤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는 말은 더 이상 못하겠군" 이 말을 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교황님, 이제 우리는 '은과 금은 없다'는 말뿐 아니라,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도 못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퀴나스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초대 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엄청난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 우리의 교회는 땅도 건물도 많이 가지고 있다.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은과 금은 이제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잃었다"

 

5. 독일의 벤야민 슈몰크 목사님이 1704년에 작사한 찬송입니다. 부부가 마을 심방 다녀온뒤 보니 집이 다 불타버렸고 어린 두 아들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을 때 비통한 마음으로 부르짖게 되었고 이 일로 찬송 549장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를 작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을 불러보고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 부부의 신앙을 말해 봅시다.

“오, 예수님, 비록 제가 당한 슬픔이 크오나 주님도 세상에서 우셨고 자주 한자 슬퍼하셨으니 이제 제가 주님과 함께 울어야 한다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이 고백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기대이기도 하다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을 보면 믿음을 설명하기를 “믿음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씀하는데 여기 실상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지금 보는 것으로 이 말씀 속에는 ‘포기’와 ‘기대’가 같이 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당신은 믿음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는 당신은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들이라도 포기할 수 있습니까? 둘째로는 “당신은 모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4. 삶으로 옮겨내기

1. 대림절을 맞이하여 당신은 얼마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각자 말해 봅시다.

 

2. 목자의 신앙을 묵상해 보며 깨닫고 본받을 것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3.“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게 있을 것이로다”라는 바울 고백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목자들은 천사들로부터 구주 탄생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그 구원을 확인했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성탄의 기쁜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천사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였다.(그래서 복음서에 기록될 수 있었다) 물론 내게 화가 임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은혜에 감사하여 내가 먼저 받은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Ⅱ. 돌봄과 기도

1)오늘 주신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2)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 지역사회를 잘 섬기는 교회, 힘써 복음을 전하며 선교하는 교회. 사랑으로 섬기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교회가 되도록 3)목회자와 선교사(사역, 가정, 건강 등)와 교회 일꾼들을 위해 4)영육 간에 병들고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5)셀 식구들을 기도제목을 위해

Ⅲ. 알림

대림절 연속 기도: 요일 시간을 정해 힘써 참여바랍니다. ●교인소통 어플: [만나톡]을 설치바랍니다.(현재 15명 설치)

●다음 주일: 1)성찬식(정현진목사 설교, 집례) 2)김천 신암교회 윤광태목사 부인 및 이전 리모델링을 한 선한목자 교회를 돕기 위한 한주일 헌금 실시 ●지역아동센터: 12월부터 안상녀님이 생활복지사로 근무 (이경민님은 종교가 달라 못하겠다 했습니다.)

기아 일일찻집: 11일(월) 점촌시민교회 나눔카페에서 낮 12시~오후 8시까지 ●식사 및 청소담당: 필리핀(5)셀

*찬송 104을 부르고 헌금을 드리고 셀 리더가 헌금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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