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말씀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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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말씀과 만남
12월 3주 박승남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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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2월 세 번째 셀 가족 모임

1. 말씀읽기와 내용 살피기   

1)찬송 혹은 복음 성가를 몇 장 부름 2)오늘의 제목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이며 히브리서 3:1~6절을 읽어 봅시다.

1. 그림으로 보기 

1.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 (원문은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이시며 대제사장”)

 

2. 예수님의 삶과 모세의 삶에서 비슷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셔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모세나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하였다. 그런데 다른 점은 모세는 종으로서 신실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하였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장차 말씀시려는 것을 증언하려고 섬긴 일꾼이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역사이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출애굽의 역사요, 성막과 제사법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할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히1:2~3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시켜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무엇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권하고 있으며 그러면 무엇이 된다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성실하게 돌보셨습니다. 우리가 그 소망을 두고 확신과 자랑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표준새번역)

히브리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집 즉 거대한 하나님의 집(가족)으로 이야기한다. 이 집은 가족으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을 말한다.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딤전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집은 안전한 곳이다. 흘러 떠내려 가는 사람들은 그 집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붙든 상태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라. 이는 내가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한다. 우리가 주님을 놓지 않으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러지 않으신다.

집 속에는 안식이 있다.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우리 집만큼은 못하다. 역시 최고의 집은 우리 집이다. 아내가 남편의 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편은 집사람인 아내와 같이 있을 때가 최고로 좋아야 한다. 참된 안식은 집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지으신 분도 지켜 가시는 분도 영원히 붙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 나올 것냐 아니냐, 예수 믿을 것이냐 안 믿을 것이냐의 믄제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릴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런데 이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붙잡아 세상으로 이단으로 유대교로 떠나가려는 사람들 또는 떠나 가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2. 사건으로 겪어내기 - 말씀의 개인화

당신은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주어진 일을 하면서 얼마나 예수님과 주님의 말씀을 생각는지 말해 봅시다.

 

3. 가슴으로 이해하기

1. 히브리서가 쓰여진 시대 배경에은 어떠한지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1)환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2:18, 3:13, 4:15, 5:2, 12:3,12절 등) - 그러나 아직 피흘리는 박해는 당하지 않고 있으나(12:4) 핍박이 박두한 느낌을 준다.

2)영지주의- 성도들을 유혹하는 다른 교훈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지식을 얻으면 지식을 내 영혼이 깨우쳐주셔 내 영혼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다. 즉 머리로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영지주의자들 그리고 구원파는 한번 영적으로 구원받았으면 육신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던지 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야고보서, 요한1서를 보면 믿음으로 살고 행동으로 살고 깨끗하게 살고를 계속 강조한다. 이는 영지주의에 대한 반격이다.

3)유대교와 기독교의 결별(유대교와의 충돌) –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는 로마제국 내에서 합법화된 종교였던 유대교의 보호우산 아래 성장했다. 초기에, 유대교가 정치적 위치가 확고할 때 기독교에 대해 관용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85년 야브네(얌니야) 회의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정적 결별이 이루어진 것이다. 주후 66~70년까지 유대 전쟁 기간 동안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새롭게 지도자로 부상된 율법전문가인 바리새인들이 로마 당국의 허락 하에 요단강 서쪽에 바리새 당국을 설립하고 율법에 근거한 유대 사회 재건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주도한 개혁의 기치아래 이단 추방물결이 일어났고 ‘나사렛당’ 또는 ‘나사렛인들’이라고 불렸던 초대 기독교인들을 회당 예배와 유대공동체로부터 쫒아냈다. 이렇게 해서 1세기 말에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이제 크리스천은 유대교 우산 속에서 있다가 이제 장사도 못하고 직장 잃어버리고 심한 갈등을 겪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로 돌아가거나 돌아가려는 사람들도 있게 되었다. 당시 유대교에 돌아가면 생계보장, 신변보장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없습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어긴 자들도 다 심판을 받았거늘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겠느냐?(2:2~3)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2:1),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라(3:6).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6:2)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히브리서 저자는 붙잡고 있는 사람도, 놓쳐 떠내려가는 사람도, 흘러 떠내려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붙잡고 있는 자에게는 더 강하게 붙잡으라, 떠내려가는 이들에게는 붙잡으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붙잡으라는 것인가요? 큰 구원은 무엇인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다.

 

2.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경건의 기본 자세입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까?

헬라어 ‘카타노에사테’란 단어는 단순한 지식적인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관찰하다’ ‘숙고하다’ ‘마음에 두다’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것이며 ‘내적인 인식’을 내용으로 하는 신앙적인 각성을 통한 묵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강 알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하여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깊이 알고 경험해야 한다.

 

3. 왜 예수님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라고 불렀을까요? 이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1) ‘사도’/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은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요4:34“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러면 보내심을 받은 사도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다니사”,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역할을 감당하시려고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치유(섬기심)하셨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뜻대로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2)‘대제사장’/ ‘대제사장’은 짐승을 잡아 죽여 피를 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태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일은 짐승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드리고 백성의 죄를 사함 받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만 예수님을 사도라고 부르고, 대제사장으로 부릅니다. 대제사장이란 칭호는 예수님의 사명에는 제의적 요소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절대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깝게 하는 역할이 대제사장의 역할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역할은 바로 그리스도의 역할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8~29장을 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라 하라 하시면서 아론이 입어야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화로운 옷에 대해 길게 말씀하시고 이어서 일주일 동안 행할 제사장 직분 위임식에 대해서 길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레위기 8장에서부터 10장을 보면 드디어 최초의 대제사장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중보자로 대제사장을 세우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신적 영광을 상징하는 거룩하고 화려한 영화로운 에봇을 입었습니다. 에봇의 화려함 뒤에는 사랑과 책임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헌신과 정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은 가야바였고, 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로 이들은 정치적 이권을 쥐고 있었고, 성직매매로 많은 돈을 챙겼으며, 로마와 유대가 결탁하여 온갖 종교적 비리를 저질렀다. 그러니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리 만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은 온갖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나아가 자신이 친히 제물까지 되어 주셨다. (화목, 속죄, 속건제물이 되어 주심)

히9:11~14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4. 히브리서 4:15절 말씀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어떠한 마음(성품)을 가지신 분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찾아보고 주님의 마음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공동번역)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정하다(쉼파데오) '함께 고생하다, 함께 고난을 당한다, 동정하다' 감정을 같이 느낀다, 동료의식을 갖다, 공감하다는 뜻입니다. 실로 예수님은 죄의 유혹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인간의 형편을 깊이 이해하시고 함께 아파하시고 공감하시는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empathize) 분이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비통해 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시고, 심지어 울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의 심각성을 공감하신 것입니다.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공감능력은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처럼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서로 간에 공감지수가 얼마나 될까?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를 알아 주고 있는가?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원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 같아 괴로워하고 답답해 해고 화가 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자기 입장에서만 말하고 자기 입장에서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대합니다. 그래서 공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고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죄인이요 허물지고 약점이 많은 인생인 나를 용납하시고 공감하시고 위해 십자가를 져 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든지 이해, 용납, 용서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이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1)이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가라 하신다. 즉 사도가 되라 하시는 것이다.

요17: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먹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셔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세상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고, 순교의 자리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2)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죄를 짓지 말고 살라

우리가 죄를 짓고 살면 얼마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속이 상할까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죄 짓지 않기를 기대하십니다. 불의,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또한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물론 잘못을 하고 죄를 짓고 시험에 들었을 때 더욱 예수님을 생각하고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벗어나야 합니다. 3)우리 모두 제사장으로 살아가라! 제사장 직을 가진 사람으로서 주위 사람들을 죄 짓지 않게 도와줘야 합니다. 지은 죄를 용서받게 도와줘야 합니다. 공감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알려)야 한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4. 삶으로 옮겨내기

1. 당신은 신앙이 흔들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를 입고 시험에 들었을 때 어떻게 해서 극복했는지 말해 봅시다.

2. 경건의 생활의 기본은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할 수 있고,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Ⅱ. 돌봄과 기도

1)오늘 주신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2)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 지역사회를 잘 섬기는 교회, 힘써 복음을 전하며 선교하는 교회. 사랑으로 섬기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교회가 되도록 3)목회자와 선교사(사역, 가정, 건강 등)와 교회 일꾼들을 위해 4)영육 간에 병들고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5)셀 식구들을 기도제목을 위해

 

Ⅲ. 알림

●성탄절 행사: 1)24일 주일 저녁 7시 성탄전야예배 및 축하발표회(오후예배 생략) 2)25일(월)성탄축하예배 3)각자 이웃, 가족과 감사와 나눔과 기쁨의 시간 지냄 ●교인소통 어플: [만나톡]을 설치바랍니다.(현재 20명 설치) ●식사 및 청소담당: 리폼드(1)셀

*찬송 85을 부르고 헌금을 드리고 셀 리더가 헌금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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