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말씀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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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말씀과 만남
6월 3주 박승남 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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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6월 두 번째 셀 가족 모임

Ⅰ. 말씀

1. 말씀읽기와 내용 살피기 

1)찬송 혹은 복음 성가를 몇 장 부름 2)제목 [데라와 같은 교인이 되지 말라!] 3)창11:24~32, 수24:1~2을 찾아서 읽어봅시다.

1. 그림으로 보기

1. 바벨이란 히브리어로 ‘흩어진다’, ‘혼잡하다’는 말이고 바벨로니아 어로는 ‘쌓다’, ‘세운다’는 말로 역설적 언어유희인데 이를 통해서 바벨론 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의 어떤 생각을 각각 하는 것일까요?

바벨론 사람들은 아, 성을 쌓고 우리가 높아진다 하는데 히브리 사람들은 바벨하면 망해! 라고 하는 것입이다. 세상 사람들 기어코 바벨을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바벨하면 죽는다고 하시는 것이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하나님께서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한 사람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초정하심으로 새로운 역사으로 시작하시는데 하나님이 초청(이민초청)하시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의 이름은 24절부터 32절까지를 보면 데라라는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올까요?

31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데라 이름이 무려 8번 나온다. 하지만 이후 창세기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과감하게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던 데라는 이상하게도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았고 어디로 갔을까요? 지도로 우르, 하란, 마리, 다드몰(대하8:4), 다마스쿠스(다메섹), 가나안 지역들을 찾아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인 가나안으로 가려면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오다가 마리라는 도시에 와서 왼쪽인 서남으로 가야 다드몰(대하8:4), 다마스쿠스(다메섹)가 나오고 거기서 또 내려와야 세겜 등 가나안 지역이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데라는 그냥 위로 직진해서 하란에 정착해 버리고 말았다.

 

4. 여호수아 24장을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두고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는데 2~3절을 보면 데라가 어디에서 어떻게 했다고 말하였나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데라가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달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큰 사원을 지닌 우상숭배의 도시였다. 그러기에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던 데라도 달신을 믿고 있었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 있다. 데라가 살고 있는 그 땅에서는 영적인 분위기가 우상숭배의 분위기였기에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그 곳을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데라의 가족들을 그곳에서 빼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22절에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한다. 여기 어떤은 모든, 온갖이라는 말이고 모양이라는 말은 ‘보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볼 수 있는 것이나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유혹은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는 유혹을 받는 곳에 노출이 되지 말고 악한 자리에 가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악한 곳에 간다고 할지라도 나는 믿음으로 이길 수 있어 라고 말하지만 이는 분명 교만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을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한다.

 

2. 사건으로 겪어내기 – 말씀의 개인화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일이 있다면 말해 봅시다.

 

3. 가슴으로 이해하기

1. 바벨탑 사건을 거꾸로 놓은 것이 야곱의 꿈에서 사닥다리 사건인데 이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벨탑은 땅에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려고 한다.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바벨탑은 인간이 위로 올라가려 했고 사닥다리는 천사가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니까 바벨탑과 정 반대의 개념이다. 야곱의 사닥다리는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인간이 복을 누릴 수도 없음을 보여 준다. ‘복’이란 우리가 빼앗는 것이 아니다. 베스트만이라는 학자는 복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면서 누리는 자연적인 현상,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 당연히 누리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복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이다.

 

2.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가 바벨탑 사건 이후 모든 사람들이 나가버려 텅텅 비었고 하나님이 만드시고 이 땅에 살게 하신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고 있고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가 그친지 오래되었을 때 또한 텅텅 빈 하나님의 나라에 모처럼 초청했는데 하란이라는 곳으로 가서 더 이상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지 말해 봅시다.

하나님은 데라와 그 가족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를 소원하셨고 가나안에서 저들을 기다리셨는데 하란에 주저앉고 말았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아프셨을까? 우리가 믿기로 작정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하고 직분을 맡았으면 끝까지 충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처음에는 잘 하는 것처럼 하다가 몇 달 지나면 흐지부지 데라처럼 엉뚱한 자리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달려갈 길 다가고 선한싸움 싸우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3. 그렇게 갈대아 우르를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가려다가 왜 하란에 머물러 거기서 살다가 그냥 죽었을까요? 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못 누리고 죽었을까요?

1)두려움 때문에/ 학자들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발달한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올 수 있었지만, 가나안은 타문화권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하란에 정착했다고 보기도 한다.

2)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데라도 한 편으로 마음으론 떠나야 하는데, 가나안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수 없이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란이 더 좋았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그래 나대신 잘 가라.” 요즘 말로 하면 “나 대신 예수 잘 믿어라.” 그런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아들이 믿고 아들이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내가 믿는 것이다. 아들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3)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 골로새서 4:14절을 보면 데마는 초기에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하지만 디모데 후서 4:10절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이 세상은 헬라어로 '뉜 아이온'으로 '현재시대'를 뜻합니다. 데마는 현재의 세상을 사랑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과 믿음의 사람들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합니다. 여기 사랑 사모는 모두 같은 단어 ‘아가파오’입니다. 그리고 나를 버렸다는말은 데마가 곤경에 처한 바울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신앙마저도 버린 것입니다. 데마‘예수 그리스도’ 보다 ‘세상’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것입니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4. 본문 32절 말씀과 같이 데라는 나이가 205세가 되어 하락에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이어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살아 있던 데라의 죽음을 먼저 기록한 뒤에 아브람을 부르신 이야기를 기록하였을까요?

1)데라의 이야기를 마감하고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2) 영적으로 죽은 것임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심장 박동이 정지되거나 호흡이 끊어지면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를 죽었다고 한다. 엡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이제 주님 안에서 산 자로서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새 생명가운데 살아가는 자로 삼으셨다. 그런데 성경은 비록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었을지라도 죽은 자들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하여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하셨고(계 3:1) 사도 바울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았디"고 하였고(딤전 5:6) 히브리 기자는 죽은 행실이 있다고도 하였다.(히 6:1)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이 어떠한지,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살펴며 늘깨어 함께 하시는 주님을 가까이 주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하자.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4. 삶에 옮겨내기

1. 목사이자 신학교 교수인 유진 피터슨은 “교회는 나오고 종교생활은 하는데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데라이고 하란 교인이라”고 하였디. 그러고 보면 교회 안에 가나안 교인보다 하란 교인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교인인 데라는 버리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하란 교인입니까, 아니면 가나안 교인입니까? 즉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교인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가까이 하며 기뻐 순종하려 하는 교인입니까? 깊이 생각해 보며 말해 봅시다.

 

2. 만일 하란에 머물고 있는 데라에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떠한 말을 해 줄 것인지 말해 보고 당신은 어떠한 교인이 되기를 원하는지 오늘 말씀을 생각해 보며 말해 봅시다.

 

II. 돌봄과 기도

셀 가족의 형편과 복음전도 대상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아래의 제목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1) 가정과 목회자와 선교사님들과 후원하는 자립대상교회와 목회자들이 지치지 않고 사명 잘감당하도록 2)당회, 각 기관이 평안하고 화목하도록 3)이 나라 민족의 정의, 평화와 화해와 용서, 통일, 판문점 선언, 센토사 합의의 차질없는 이행을 위해 4) 셀 모임과 리더와 기도가 필요한 연약한 이들과 셀 가족 식구들 및 각자 기도제목을 위해

. 소식

●월례회: 오는 주일 낮 예배 후에 힘써 기도: 판문점 선언 및 센토사 합의문이 차질없이 잘 이행되어 핵문제가 해결되고 종전선언이 되고 평화협적이 체결되어 항구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 되고 인권개선 및 자유로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식사 및 청소담당: 필리핀(5)셀

V. 마무리

* 찬송 292장을 부르고 헌금을 드리고 셀 리더가 헌금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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