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선교사 | 박승남 | 2022-04-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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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위치한 양화진에는 불모지와 같았던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선교사의 묘지가 있는데, 그중에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이라는 선교사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녀가 한국 땅에 묻히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녀는 186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1886년 그녀는 한국에 의료 선교가 절실하다는 강의를 듣고 펜실베니아에 있는 여성의학대학에 지원해서 1990년 졸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을 때, 캐나다 출신의 윌리암 제임스 홀이라는 선교사를 만나게 됩니다. 홀은 로제타의 미모와 성품에 반해 한평생 함께 사역하기를 원하면서 청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로제타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윌리암 홀은 이미 중국선교사로 가기로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홀의 청혼을 거부하고, 홀로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후, 홀은 선교부에 방문해서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꾸어 한국에 들어왔고, 1892년 6월 21일 한국의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홀선교자가 병에 감염되어,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한국 땅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로제타는 당시 임신 말기였기 때문에 아들 셔우드를 데리고 미국에 돌아가서 딸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사랑하는 딸아 네 남편 윌리암 제임스 홀이 이루지 못한 조선 사랑을 네가 이루어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과 땅을 데리고 다시 조선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조선에 다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딸이 풍토병에 걸려 한국 땅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딸을 남편 옆에 묻으면서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셔우드 홀과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녀는 비록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었지만, 조선을 향한 헌신적인 삶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자 환우를 위해 광헤여원을 개원했고, 어린이를 위한 병원뿐만 아니라, 맹인학교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43년 동안 한국에서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삶은 동토와같이 얼어붙은 조선 땅에 주님의 복음 사역을 예비한 삶이 되었습니다.
로제타가 한국 땅을 위해서 한평생을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한 구원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뒤로 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삶을 통해 주님의 구원을 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삶은 바로 하늘을 담은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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