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회의 시작 - 복음의 선각자들과 신앙공동체 | 박승남 | 2022-09-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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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회의 시작
복음의 선각자들과 신앙공동체
1) 장로교선교회의 입국 (1) 미국 북장로교회헤론이 의료훈련을 더 받고 선교지로 떠나겠다는 요청에 해외선교부는 중국에서 일하던 알렌을 한국으로 파송했고 알렌은 1884년 9월 20일 제물포에 도착했다. 언더우드는 1885년 일본을 거쳐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했고 제중원의 화학교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2)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헨리 데이비스는 1889년 한국선교사로 목사안수를 받고 1889년 10월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몇 개월 만에 질병으로 사망했고 1891년 맥케이 목사 부부, 멘지스, 포오셋, 페리 등이 부산에 도착하면서 호주장로회의 본격적 한국선교사 시작됐다. (3) 미국 남장로교회미국 유학 중이던 윤치호가 미국신학생 해외선교연맹대회에서 한국선교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을 듣고 감동받은 루이스 테이트, 카메론 존슨, 윌리엄 레이놀즈는 한국선교사로 자원했고 윌리엄 전킨과 함께 1892년 남장로교회 7인의 선발대로 파송됐다. (4) 캐나다 장로교회캐나다장로교회는 1898년 한국선교를 시작했지만 제임스 게일은 캐나다YMCA의 지원을 받아 이미 1888년 내한했고 토론토실업인들의 지원으로 펜윅이 1889년, 토론토의과대학기독교청년회의 후원으로 하디와 에비슨이 각각 1890년, 1893년에, 윌리엄 맥켄지가 캐나다연해주지역장로교대학선교협회의 파송을 받아 1893년 한국에 왔다.
2) 장로교선교회의 초기 선교활동 (1) 의료선교선교사들은 제중원의 의사와 교사로 소속되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1885년 헤론 의사부부, 여성 의료인 1886년 애니 앨러즈가 부인과 책임자로, 1888년 여자 의사 릴리아스 호튼이 부임했다. 알렌은 1885년 의학당을 설립을 시작했다. 에비슨 선교사는 1899년 세브란스의 기부를 받아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했다. 1904년 대한제국 정부는 제중원의 건물 및 대지를 북장로교회부터 환수했다. (2) 교육사업언더우드는 한국근대화교육의 선구자였다. 1886년 정부의 승인을 받아 고아원 성격을 띈 기숙학교 언더우드학당(구세학당)를 세웠다. 1902년 게일은 연지동으로 교사를 옮겨 예수교중학교를 개교했고 경신학교라 개칭했다. 애니 엘러즈는 1887년 최초 여학교인 정동여학교를 시작했고 1890년 도티가 내한하여 학교를 발전시켰다. 1909년 대한제국 학부의 인가를 받아 사립 정신여학교가 됐다. 1909년까지 설립된 학교들 중에 장로교 학교가 605개교에 학생 14,708명, 감리교 학교가 200개교에 학생 6,423명, 기타 성공회와 천주교 등을 합해 950개 학교가 있었다. (3) 성경번역1887년 서울에 모인 선교사들은 성경번역과 감수를 목적으로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했다. 로스역개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번역을 결정했다. 1900년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영국성서공회, 미국성서공회가 협력해서 시험판 신약성경을 출간했고 1906년 수정을 거친 공인판, 1904년 공관복음 국한문혼용본, 1906년 신약젼서국한문이 발간됐다. 1910년 구약번역이 완성되어 1911년 셩경젼셔가 출간됐다. 이 성경은 1938년 개역과 대비되어 후에 구역이라 칭하게 됐다. 성경번역에서 신명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언더우드가 중국과 한국의 종교사를 연구하여 한국인들이 초월적 절대적 하ᄂᆞ님 신관을 가진 것과 성경적 유일신 개념과 상통한다고 결론지었다. 게일은 주시경으로부터 하ᄂᆞ님이란 말이 하늘의 주인이라는 뜻 외에 유일성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1900년부터 유일신을 강조하는 뜻으로 하ᄂᆞ님을 선호했다. (4) 찬송가 출판과 문서사업언더우드는 최초로 4성부의 악보가 포함된 찬양가(1893)를 출판했고 게일과 기포드 부인은 찬셩시(1895)를 편집, 출간했다. 1902년 장로회공의회는 찬셩시를 공인찬송가로 결정했다. 1897년 언더우드가 주간지 그리스도신문을 창간했다. 게일은 1893년 한글문법책 사과지남을 출판했고 1897년 한영ᄌᆞ전, 1890년 한국어회화입문, 게일과 헐버트의 도움을 받아 1894년 한영ᄌᆞ전과 영한ᄌᆞ전을 출간했다. 1890년 언더우드, 헤론, 올린저 등의 노력으로 장감연합문서사업기관인 조선성교서회가 조직됐다.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간행물의 잡지류를 발행하여 전국에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 후에 대한성교서회-조선예수교서회-대한기독교서회로 변경됐다. 출처/ http://www.pck.or.kr/bbs/board.php?bo_table=SM01_02&wr_id=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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