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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배불리 먹이신 공동체 박승남 20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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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배불리 먹이신 공동체

 

제자들이 할 수 없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6: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그러면 이렇게 떼를 지어 앉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일 그냥 그 많은 사람을 줄을 세우셨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떼를 지어 앉게 하심으로 질서를 세우셨고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50100명이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가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떼를 지어 앉게 하신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이 라는 말을 3가지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우선 1) 마가복음 639절을 보면 쉼포시온으로 이함께 마시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연, 연회, 함께 먹는 사람들의 무리, 주연이나 연회가 열리는 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비록 광야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만찬을 하신다는 그런 감정이 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2)마가복음 640절을 보면 프라시아로 이 단어는 프라손(pravson 부추, 서양대파 leek)에서 유래하였는데 정원 화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제자들이 볼 때 마치 화단에 꽃들이 피어난 것처럼 빨강, 노랑, 파랑 색깔들로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3) 누가복음 914절을 보면 클리시아로 기대는 장소,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무리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식사할 때 서로 기대어서 먹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곳은 정원화단도 아닙니다. 연회나 만찬장, 홀도 아닙니다. 더구나 거기서 무슨 만찬을 하듯이 서로 기대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옷은 거의 다 비슷한 옷이라 오늘처럼 알록달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기에 복음서 저자들의 시선이 그리고 나아가 주님의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요? 주님은 오합지졸인 무리를 귀하게 여기시어 정원화단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시고 서로 만찬 자리처럼 서로 기대어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주님이 먹여주신 공동체입니다. 비록 주님의 떡을 받는 무리가 힘이 없고 작고 연약한 자리도 매우 소중히 여기셨고 또한 서로 소중히 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서로 얼굴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즐겁게 지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주님 주시는 생명의 떡과 음료를 먹고 마시는 연회장의 사람들입니다. 샤론의 꽃 되시는 주님의 정원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학력과 가진 것과 사회적인 지위가 다르다 해도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는 정원의 꽃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보십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다 단점, 허물, 약점들이 있지만, 주님 보시기에 좋은 점들, 칭찬하고 싶어서 하시는 것들, 기뻐하시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더 크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성도들의 정원으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만찬장의 귀한 사람들로 서로 기대고 대화를 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결국, 주님의 교회는 기쁜 곳, 즐거운 곳, 웃음이 넘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과 희망과 평화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 주시는 풍성한 양식을 먹고 배부르며 만족해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기댈 수 있고 서로 의지하고 기쁨과 슬픔, 어려움을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바로 그러한 공동체입니다.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인가요?

여러분 교회는 서로 기댈 수 있는 공동체 즉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버팀목 사명고취해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4절을 보면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경고, 충고)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위로)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굳게 잡다, 헌신하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인정이 메마른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 교회가 꼭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홀로 설 수 없어 쓰러지는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때로는 경고, 충고하고 때로는 격려, 위로하고 때로는 굳게 잡아 주고 오래 참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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