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젊은 세대의 언어와 존대법을 반영했습니다 ]
올해는 최초의 우리말 번역 성경이 나온 지 140주년 되는 해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성경은, 중국에 파송되었던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존 로스 목사님과 그의 동역자들이 1882년에 만주에서 번역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입니다. 이때 로스 목사님은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순수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이 결정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기는 하셨지만, 당시의 한글은 아직 일반 언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정착되지 못한 상황이었고, 여전히 한자가 더 존중되고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천대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스 목사님은 어두운 시기를 살아가던 조선 백성들에게 빛과 생명이 될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면서, 어려운 한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읽고 이해하며 배울 수 있도록 순수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번역된 한글 성경이 널리 보급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고, 성경에 기초를 둔 그리스도교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글 성경 번역은 한글과 우리나라 문화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오늘날 준용되고 있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은 성경 번역이 진행되면서 갖추어진 성경 철자법과 맞춤법을 기초로 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 문맹 상태에 있던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면서 문명의 세계로 나가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글 성경 번역은 우리나라 기독교의 기초를 놓은 획기적인 사건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을 넘어서서 한글과 우리나라 문화 전체에 크게 영향을 끼친 중대한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한글날이 들어 있는 10월에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자랑스럽게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존 로스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말 성경 번역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면서 최초의 우리말 성경 번역 140주년을 앞둔 2021년 11월에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새롭게 번역 출간했습니다. 이에 『새한글성경』을 새롭게 번역하게 된 취지와 특징을 간략히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1. 21세기 디지털 세대 위한 새로운 번역 성경
오랫동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1998년)을 읽으며 신앙생활을 해 오신 성도님들은 새로운 성경의 출간 이유를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현재 예배용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을 통해 한국교회는 큰 은혜와 부흥을 경험했고, 지금도 대부분의 성도님은 이 성경을 읽으며 큰 어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옛 문체나 어려운 한자어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에 남아 있어서, 젊은 세대들이 다가가기에는 다소간 어려움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언어 사용이나 독서 습관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전자 매체의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을 지향하여 새롭게 번역할 필요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한성서공회는 2011년 9월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새한글성경』의 번역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와 독서 환경의 변화, 그리고 성서학의 발전을 고려한 새로운 번역과 개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2. 짧은 문장, 다양한 존대법
『새한글성경』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 문장을 최대 16어절 50글자가 넘지 않도록 짧게 번역했습니다.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를 담아 전달하면서 독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통해 읽기에도 불편하지 않도록 고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존대법을 반영했으며, 문장의 ‘종결형’을 다양화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대화하시는 상황이 다양합니다. 때로는 대중들을 향해 설교하시고, 때로는 제자들과만 말씀을 나누시고, 때로는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하십니다. 그때마다 문장의 마침꼴에 변화를 주어 각 상황에 맞도록 번역했습니다. 대중들에게는 ‘하십시오체’를, 제자들에게는 ‘해요체’를,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적 대화를 하실 때에는 ‘하오체’를 쓰시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이 존댓말을 사용하시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엄청난 사람 사랑과 존중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새한글성경, 요한복음 3:16)
3. 고유 명사의 새로운 음역과 현대 도량형
요즘 젊은이의 경우에, 교과서나 일반 사회에서 사용하는 인지명과 성경에서 사용하는 인지명의 표기법이 같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때로는 음역의 차이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들을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느끼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새한글성경』에서는 인지명 등 고유 명사의 음역을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용례에 맞추어 일부 수정했습니다. ‘아덴’을 ‘아테네’로, ‘애굽’을 ‘이집트’로, ‘아볼로’를 ‘아폴로’로, ‘도마’를 ‘토마스’로 바꾼 것이 그 예입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또한 옛 도량형이나 시간 표현을 현대 단위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백말’이라고 했던 것을 ‘2,200리터쯤’으로 한다든지(누가복음 16:6), ‘제구시’라고 했던 것을 ‘오후 3시’로 하여(누가복음 23:44) 현대 독자들의 직관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 것입니다.
4. 아라비아 숫자와 문장 부호
『새한글성경』 번역자들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성경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읽도록 도울수 있을까를 많이 고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시도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숫자의 사용입니다. 위의 도량형과 시간 표현의 번역보기에서 볼 수 있듯, 단위의 현대적 표기 방법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했습니다. 공동으로 소리 내어 읽을 때 혼동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독성을 높이고자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문장 부호의 활용입니다. 문장 부호가 없는 성경에서는 대화문이나 인용문이 나올 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문장 부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대화문에서 인용 부호를 사용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그 내용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여 대화나 내러티브(줄거리)의 흐름을 쉽게 파악하도록 했습니다.
5. 문학 갈래의 특징을 살린 번역
잘 아시는 대로 시편은 산문과는 달리 ‘시’입니다. 시의 특성을 고려하여 시편 편집에는 ‘행갈이(줄바꾸기)’를 사용했습니다. 산문처럼 쭉 이어서 적지 않고, 시행을 구분하여 행갈이를 함으로써 시 형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한 시에서는 독특한 어순의 사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느낌과 강조점을 달리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번역에서도 잘 전해지도록 시편에서는 원문의 도치문을 번역문에서도 그대로 살리고자 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리아의 찬양’(누가복음 2장), ‘그리스도님 찬양’(빌립보서 2장) 등 운문이 나올 때는 시편과 마찬가지로 시 형식에 주안점을 두고 번역하고 편집했습니다. 그 외에 서신서의 경우에도 해당 문학의 갈래가 복음서와 다른 점을 고려하여 번역 문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6.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갖춘 온라인 버전
이번에는 우선 번역 본문만 공개했지만, 『새한글성경』은 앞으로 준비가 되는 대로 온라인 버전으로도 보급하려고 합니다. 온라인 버전에서는 분량 제한 없이 성경 읽기에 참고가 되는 그림, 사진, 지도, 동영상과 고고학 관련 자료들도 지속해서 업데이트하여 제공할 것입니다.
7.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며 활용하기 좋은 성경
『새한글성경』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의 대체성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과 병행하여 활용하기 좋습니다. 두 번역본의 표현에 차이가 있는 경우, 어느 하나가 잘못된 번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문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러한 차이점을 두루 생각하면서 본문 이해의 폭을 넓히게 해줍니다.
8. 소리 내어 읽기 좋은 성경
『새한글성경』은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책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읽어 주고, 다른 사람들은 함께 듣는 방식으로 성경 읽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이 기록된 언어인 ‘코이네 그리스어’는 구어체 일상 그리스어입니다. 이런 원문의 특성을 살려 구어체나 약간 가벼운 문체도 번역에 많이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눈으로만 읽을 때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소리내어 읽는다면 훨씬 더 편안하게 읽힐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2023년 말까지 구약까지 포함한 『새한글성경』 완역판 출간을 목표로, 현재 구약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온라인 버전에 덧붙일 설명 자료 준비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이 『성경전서 개역개정판』과 더불어 한국교회 전체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젊은이들이 신앙의 대를 잇게 하는 귀한 통로로 잘 사용되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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