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민감성을 잃지 마소서. | 박승남 | 2023-12-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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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민감성을 잃지 마소서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3학년 강의실에서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고 있었습니다. 시험문제는 한 문제였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이 상징하는 종교적, 영적 의미를 서술하라.’ 모두 열심히 시험지에 답을 쓰고 있는데, 한 학생을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교정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혀 공부를 안 했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답을 못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험 감독을 하던 교수가 다가가 그 청년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왜 답안을 작성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딱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고 대답하더랍니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직전, 그 청년을 부리나케 한 문장을 써서 답안지를 제출했습니다. 그 청년은 그 시험에서 최고 성적인 A+를 받았습니다. 그의 답안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물이 자신의 창조주를 보고, 얼굴을 붉혔도다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그 학생의 이름은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788~1824), 나중 그는 19세기,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바이런은 창조주이시며 구속주로 오신 그분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그가 쓴 답안은 17세기 영국 시인이었던 리처드 크래쇼 (Richard Crashaw)의 시구(라틴어)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수줍은 물이 ‘주님’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Nympha pudica Deum vidit, et erubuit).”입니다.
대림절이 다가왔습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교회력입니다. 오신 주님과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때마다 아람어 기도문이었던 ‘마라나타!’(“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전 16:22, 계22:20))로 예배를 마치곤 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간절히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사모하면서 입에 달고 다닌 말입니다. 이 기도문은 발음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마란 아싸!(The Lord has come), 마라나 타!(Oh Come, Lord). 부디 누가 주인인지, 누가 내 인생의 왕이신지 그 고백 잃지도, 희미해지지도 않기를 바랍니다. 물로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만들려고, 그거 가져오려고 애쓰기보다는 왕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내 얼굴이, 내 가슴이 붉어지는 영적 민감성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왕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퍼지기를 소원하며 마지막 때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며 전진해 나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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