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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파노의 크리스마스 박승남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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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파 파노의 크리스마스-레오 톨스토이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아직 오후였지만 겨울 해는 짧아서 러시아의 한 조그마한 마을의 가게들과 집에는 이미 불들을 켜고 있었다. 상기된 어린이들이 줄달음쳐 집으로 들어갔고 이제는 굳게 닫힌 집안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만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이 동네의 유일한 구두수선공인 늙은 파파 파노는 가게 밖으로 나와 거리를 휘 둘러보았다. 행복스러운 소리들과 환한 불빛 그리고 은은하면서도 구수한 크리스마스 음식 냄새에 이 노인은 아내가 살아있을 때 아이들과 같이 지내던 크리스마스를 상기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가 버렸다. 둥근 쇠 의자에 앉아 미소로 약간 주름이진 즐거운 표정을 짓곤 하던 노인의 얼굴이 오늘은 약간 슬픈 듯이 보였다. 그는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가 셔터를 내려 문을 닫고는 커피 주전자를 연탄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커다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파파 파노는 별로 책을 읽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대대로 내려오는 낡고 오래된 커다란 성경을 선반에서 내려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행을 짚어가며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베들레헴 여행길의 마리아와 요셉이 얼마나 피곤하였으며 여관방을 찾지 못해서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저런! 저런!” 파파 파노는 소리쳤다.

그들이 여기 왔더라면 내가 내 침대도 주고 아기를 따뜻하게 싸주도록 내 누비이불도 주었을걸.”

 

그는 동방박사들이 아기를 보러와서 훌륭한 선물을 드렸다는 기사도 읽었다. 그리고는 그의 고개가 힘없이 수그러졌다.

나는 그에게 줄 만한 선물이 없는데 그는 슬픔에 잠겨 생각해보았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는 성경책을 내려놓고 일어나 긴 팔을 선반으로 뻗었다. 거기에서 먼지가 덮인 조그마한 상자를 내려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조그만 가죽구두가 들어 있었다. 파파 파노는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그 구두는 그가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이것을 예수께 드려야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뚜껑을 덮어 잘 놓아두고 의자에 다시 앉았다.

 

노인은 피로를 느끼었다. 성경을 읽어갈수록 더욱 졸음이 몰려왔다. 활자가 눈앞에서 춤추는 것 같아 성경책을 닫아버렸다. 파파 파노는 금방 잠에 빠졌다.

 

자면서 그는 꿈을 꾸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작은방에 있는데 꿈을 꿀 때는 그렇듯이 그는 금방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예수였다.

 

파파 파노, 당신이 나를 보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내일 나를 보게 될 거요.”라고 그는 친절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면 내일 주의해 보게. 내일은 크리스마스고 내가 당신을 방문할 테니. 그러나 조심해 봐야 해. 나는 내가 누구라는 걸 이야기 안 할 테니까!”

 

파파 파노가 잠이 깨었을 때 교회 종들이 울리고 있었고 문살 사이로는 여린 햇볕이 스며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내 영혼이여 복될지어다.” 파파 파노는 중얼대었다.

 

그는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밤에 꾼 꿈을 생각하면서 행복감에 뿌듯해졌다. 예수께서 나를 방문하시겠다고 했으니 오늘은 특별한 크리스마스임이 틀림없어, 예수는 어떻게 생겼을까? 첫 번 크리스마스 때처럼 어린 아기로 오실까? 장성한 목수로 오실까. 그가 목수였다고 했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니 호화로운 왕으로 오실까? 그는 온종일 조심히 관찰하면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오시더라도 알아내야만 했다.

 

파파 파노는 크리스마스날 아침 식사를 위해 특별한 때만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에 올려놓고는 셔터를 올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길거리는 한적했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거리엔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소부는 누추하고 가련하게 보였다. 사실이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그것도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추운 아침에 일하겠는가?

 

파파 파노가 문을 열자 찬바람이 몰려왔다. 그는 길 건너편을 보며 큰 소리로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들어와서 더운 커피라도 한잔 들고 몸을 녹여요!”하고 불렀다.

 

청소부는 방금 들은 소리가 믿기지 않는 듯 쳐다보았다. 그는 너무나 좋아서 빗자루를 던져놓고 따뜻한 방으로 들어왔다. 난로의 열을 받아 그의 낡은 옷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빨갛게 얼어붙은 두 손으로 커피잔을 싸안은 그는 손을 녹이며 맛있게 커피를 마셨다.

 

파파 파노는 흐믓한 표정으로 청소부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연방 창문 밖으로 향했다. 오늘의 특별한 손님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듯.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청소부가 물었다. 파파 파노는 꿈 이야기를 청소부에게 하였다. “그래요,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청소부는 말했다.

저에게 기대치 못했던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셨으니 할아버지의 꿈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파파 파노는 웃었다.

 

청소부가 나가자 파파 파노는 저녁준비를 위해 양배추국을 난로에 올려놓고 다시 창가로 가 거리를 훑어보았다. 그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본 것이고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한 여인이 소리도 없이 가게와 집들의 벽에 들러붙어 그것들을 짚어가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파파 파노가 이 여인을 본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그는 매우 지친듯하였고 무언가 들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가까이 오자 그것이 엷은 홑이불에 싸인 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젊은 여인과 아기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다. 파파 파노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은 문밖으로 나가 그들을 맞으며 들어가 좀 쉬어가요. 보아하니 모두가 몸을 좀 녹이고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라고 말했다.

 

젊은 아기 엄마는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와 안락의자에 앉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파파 파노는 우유를 덥혀 아기에게 좀 먹이지요. 나도 아이들을 길러보았으니 내가 대신 아기에게 우유를 먹일 수 있을 거요.”라고 말하면서 난로에서 우유를 가져다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아기에게 떠먹이는 한편 아기의 조그마한 발을 난로 옆으로 끌어다 녹여주었다.

 

이 아기가 신발이 필요한데.”하고 구두수선 영감은 말했다.

 

그러자 젊은 여인이 신발을 살 형편이 안됩니다. 저는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 없어요. 지금도 다음 동네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가는 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파파 파노의 머리에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어젯밤 보았던 조그만 신발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놔둬야 하는데. 영감은 아기의 찬 발을 다시 내려다보고는 결심했다.

 

그는 아기와 신발을 아기 엄마에게 넘겨주면서 이 구두를 신겨 봐요하고 말했다. 그 아름다운 조그마한 구두는 아기 발에 꼭 맞았다. 그 여인은 행복한 듯 미소지었고 아기는 기쁜 듯이 낄낄거렸다.

 

젊은 여인은 아기를 안고 일어나 할아버진 너무나 친절하셔요. 크리스마스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시기 빕니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파파 파노는 크리스마스의 특별한 소원이 과연 이루어질는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에 예수님을 놓친 게 아닐까? 그는 초조하게 거리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지만, 모두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가족들을 찾아가는 이웃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해피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거지들이 나타났다. 파파 파노는 급히 뛰어들어와 따뜻한 스프와 빵을 가져다 그들에게 주고는 귀한 손님을 놓칠까 봐 빨리 뛰어나갔다.

 

겨울날, 땅거미는 너무나 빨리 깔렸다. 얼마후 파파 파노가 문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을 때는 행인들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모두 집에 들어와 셔터를 닫고 지친 듯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결국은 꿈이었단 말이지…….

예수는 나타나지 않았어.

이때 갑자기 이 노인은 자기가 방안에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정신이 말짱하였다. 처음에는 오늘 자기 앞을 지나간 모든 사람의 물결을 보고 있는듯했다. 그는 늙은 청소부, 젊은 여인과 아기 그리고 음식을 준 거지들을 다시 보았다. 그들은 지나가면서 파파 파노! 나를 보지 못했소?” 하고 속삭였다.

 

파파 파노는 당황하여 당신이 누구요하고 소리 질렀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꿈속에서 듣던 예수의 목소리였다.

 

내가 배고플 때 너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어. 내가 벗었을 때 나에게 옷을 주었고 추울 때 따뜻하게 해주었지. 나는 오늘 당신이 환영하고 도와주었던 모든 사람으로 당신에게 왔었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선 다시 조용해졌다. 시계 소리만이 딸깍거릴 뿐이었다. 커다란 기쁨과 평안함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파파 파노의 가슴에 차고 넘쳤다. 그는 기쁨에 넘쳐 노래 부르고 웃고 춤추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 그렇게 오셨었구먼!” 파파 파노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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